감정이라는 허깨비

상황이 비춘 마음의 반영, 그 허망한 실체...

by 따뜻한 불꽃 소예

시어머니께서 남편의 호출로, 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 우리 집에 오셨다.

남편의 까다로운 식성과 허약해진 몸 상태를 고려하면 그 결정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제야 그의 쇠약해진 몸을 온전히 마주한 시어머니는 적잖이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이전처럼 그의 눈을 피하려던 몸짓도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인간적인 연민이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회색빛 눈빛에,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운 슬픔이 서려 있는 듯 보였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나는 참 많이 원망했다.

남편을, 그리고 시어머니를.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허깨비에 가깝다.

그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내가 붙들고 있던 그 원망은 사실, 내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과부하의 결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사라진 채 고립되었다는 감각.

그 답답함과 무력감이 분노로, 원망으로 형체를 바꾸었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은 하늘을 떠도는 구름과도 같다.

머물러 있는 듯 보여도, 결국은 흘러간다.


분노와 원망,

특정 관계 안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실체처럼 느껴졌지만 결코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었다.

나를 죽일 듯 괴롭혔던 감정도, 한때 나를 살게 했던 감정도 자연스레 자리를 옮겼다.


"사랑이 변하니?"

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그렇다. 사랑 역시 변한다.


금강경에서 마주친 말.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존재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인 것은

실체가 없고, 끊임없이 변한다.


이 진리를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상황에 따라 화를 내고, 때로는 원망을 다시 부여잡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내 처지와 조건이 비춘 하나의 반영(reflection)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 않다.


원망이 실체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 원망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이 실은 허깨비와 같다는 사실을 그저,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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