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사라진 공간

텅 빈 마음

by 따뜻한 불꽃 소예

미움이란 뭘까


나는 한때 마음속 가득 분노와 미움이 차 있던 사람이었다.

그 대상은 조금씩 달라졌을 뿐, 감정의 성질은 늘 비슷했다.

지금은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왜일까.


아마도 미움과 분노가 대상 그 자체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

내가 놓여 있던 구조에서 생겨난 감정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힘들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지금 이 미움과 분노는 나를 지치게 하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것이구나-

이렇게 한 걸음 물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새벽부터 남편의 항암 일정으로 병원을 오갔다.

오전 근무를 마친뒤에는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와의 면담에도 함께했다.


항암 치료로 신경계가 예민해진 남편은 내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순간 거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맞대응하지는 않았다.

그 반응 역시 구조적 결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큰 슬픔이 밀려왔다.

어제는 유난히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거무스름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늘 아침,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 가벼웠다.

회사에 있는 동안만큼은 남편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구조가 바뀌자, 대상에 대한 미움도 서서히 옅어졌다.


나는 더 이상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붙들고 있지 않다.

그녀 역시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장면 속을

살아가고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이 텅 빈 공간을 즐기기로 했다.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곧장 사랑이 차오른다거나 대단한 자비가 들어선다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대로의 빈 공간이 좋다.


어쩌면 나는 오랜 시간

이 헛된 감정의 늪에서 나 자신을 소진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다가올 일들을 굳이 예측하지도,

섣불리 포기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냥 오는 대로 살아가 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어느 블로그에서 **의정불이 (依正不二)**라는 말을 봤다.

내 삶의 경계가 바뀌면, 세계도 달라 보인다는 뜻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 텅 빈 공간에는

무엇이 들어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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