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풍경, 다른 언어

설명하지 않을 자유

by 따뜻한 불꽃 소예

아이가 독감으로 아팠다. 그리고 나도 함께 아팠다.

다행히 집 근처 아동병원에 격리되어 아이와 나는 3박 4일을 함께 보냈다. 그 며칠은 결과적으로 남편에게 바이러스를 전가할 리스크를 줄여주는 구조가 되었다. 집에 암환자가 있다는 사실은 보호자로 하여금 매 순간 구조적 판단을 하게 한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독감 같은 유행성 질환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벤트지만, 나는 그때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그래도 이번에도, 그렇게 또 지나갔다.


남편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며칠 동안 묘한 일이 일어났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돌봐야 할 관리 범위가 줄어들자, 나 역시 독감에 걸려 있었음에도 컨디션이 서서히 회복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작은 틈은 나를 숨 쉬게 했다.


그동안 나는 관리자로서 상황을 수습하고 남편을 케어해야 했다. 그러나 그 며칠 동안은 그렇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 자유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 이어졌다. 남편이 늘어놓는 푸념이나 시어머니에게서 전해지는 누나네 이야기들은 더 이상 나에게 노이즈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영화관의 관객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아, 그래"라고 반응할 수 있었다.


왜 가능했을까.


최근 들어 내가 받아들이게 된 사실은, 우리는 끝내 완전히 소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같은 언어로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를 이해시키려 애써왔던 노력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관조적인 태도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화를 내고, 여전히 우리는 다툰다.


얼마 전 남편은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것을 해먹이라, 배달음식 먹이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폭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너 때문에 내 신경계가 모두 소진되어 아이에게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속으로 분개했다. 그리고 엄청 짜증을 내며 이야기하니, 남편은 그저 아무 뜻 없이 한 말이었다고 했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에겐 가벼운 말이고, 누군가에겐 버티고 있던 삶의 균형을 흔드는 신호가 된다.


그 며칠간의 물리적 틈은 나에게 관계와 삶을 구조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리를 주었다. 동시에,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허락했다. 우리는 같은 위치의 전망대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풍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해해 달라고 호소해도 남편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 역시도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언어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 앞에서,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미움이 사라진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