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 아니다
남편은 매주 월요일마다 항암을 한다.
나는 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항암 일정을 따라다니다 몸살이 났다.
그의 몸 상태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를 받아준 병원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병원에서 나는 작은 위로를 받았다.
"상태는 위중하지만, 일단 해볼 수 있는 것을 한번 해봅시다."
이 말은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생각보다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지금의 치료가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 감동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불행이 닥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면, 이 고통이 조금은 통제 가능해질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수없이 자신을 자책했고, 내 마음속에도 원망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비선형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삶은 복잡계라서, 우리가 아무리 예측하고 애써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확률을 낮출 수는 있어도, 불행을 제거할 수는 없다.
암에 걸린 사람은 모두 자기 관리가 안 된 사람이라는 식의 설명은 삶을 이해하게 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잔인해진다. 그런 일은, 그냥 발생하기도 한다.
삶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말은 그래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이 일은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과거를 더 이상 심문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일은 모른다.
지금의 항암치료가 선형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아닐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성급히 결론짓지 않기로 했다. 예측하지 않기로 했다.
불안은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처럼 낮에는 가만히 있다가 밤만 되면 튀어 오르지만,
나는 하루하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루틴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잘 살지 못한다 해도,
더 나아지지 못한다 해도,
오늘은 나를 더 이상 때리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