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것
봄이 왔다.
수선화와 조팝나무가 피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반복되는 것은 있다.
시간은 흐른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다.
사라지고, 바뀌고, 다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를 바꾸며, 다른 이름으로, 다른 자리에서 계속 남는다.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겨울을 닮은 그 소설을 읽으며 시대와 배경, 등장인물은 모두 달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낯설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폭력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전쟁 소식을 보며 나는 단순한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 안에서 겪은 일들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남고, 감정은 이어지고,
그 흔적은 다음 세대로 건너갈 것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더 큰 힘을 위해 싸우는 동안 그 안에 있는 개인은 반복해서 상처를 입는다.
그 구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만 바뀔 뿐, 형태만 달라질 뿐 비슷한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 구조를 아주 먼 곳이 아니라, 내 삶에서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희미해질 것 같지만 어떤 감정은 그렇지 않다.
어떤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삶 안에 오래 머문다.
형태를 바꿔서, 기억으로, 습관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다음 세대의 결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남겨진 것들이 전부 상처로만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지금 구름 사이로 잠시 비추는 햇살처럼,
그 짧은 순간이 전부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 반복을 그대로 이어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