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삶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은,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말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느냐는 것이다.
오랜 시간 좌절과 실망이 이어지면 사람은 변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더는 기대하지 않는 쪽이 편해졌다.
잘될 거라는 생각보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쪽이 덜 아팠다.
무기력은 그렇게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조금씩 쌓이다가 무너진 둑처럼, 한 번에 나를 덮쳤다.
나는 지쳐 있었다.
단순히 힘든 상태를 넘어, 길게 생각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더 이상 미래를 기준으로 선택하지 못했다.
그저 그 순간, 덜 힘든 쪽으로 기울었다.
사표를 던지고 싶었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판단이 아니라,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원래 통제하는 것을 좋아했다.
루틴을 만들고, 예측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것.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혼 후 많은 부분이 내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 남편의 병, 아이의 성장, 그리고 조직 안에서의 갈등.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나는 점점 내 삶을 잃어버린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그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안으로 무너졌다.
어쩌면 나는 완벽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실패를 삶 전체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
조금만 어긋나도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사람.
100이 아니면 0이라고 믿어버리는 사람.
하지만 , 이제 한 가지에 나를 걸지 않기로 했다.
삶에도, 내 생각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사건이 내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 않도록,
하나의 실패가 나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말이다.
사람은 희망이 없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희망을 유지할 힘이 없어서 포기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건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 구조는 아직 작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끝날 때까지, 정말 끝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