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대하여
어려움이 길어지면 사람은 쉽게 지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상을 향한 태도는 서서히 냉소로 기운다.
희망을 품기 힘든 현실 속에서
"괜찮아질 거야, 우리는 잘될 거야."라는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닿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끝까지 버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지난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약으로 바꾸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내 인생에는 행운이 없나 봐.라고 말했고, 시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식단도 하고, 운동을 했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거지?"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말에는 시큼한 맛이 섞여 있었다.
사소한 좌절에도 "역시 나야, 내 인생이 그렇지. 어차피 망한 인생이야."
자포자기와 체념은 생각보다 빠르게 스며든다.
책과 TV에서 보던 불굴의 의지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현재의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지고, 지금 이 상태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 속에 몸이 잠겨 있는 것처럼.
그래서 산책을 나섰다.
개나리가 피어 있었고, 앵두나무에도 꽃이 올라와 있었다.
길가의 벚꽃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
김훈의 [허송세월]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나는 그 말이 오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본다.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지금은 잠시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조금 전보다 내 안의 냉소가 옅어진 것 같다.
내 냉소와 체념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지금의 고통에 대한 좌절이었다.
그래도 계절은 변한다.
개나리가 피고,
꽃봉오리가 끝내 꽃을 터뜨리듯
나 역시
언젠가
새로운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