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로 읽는 삼국지(三國志) | 제5장 유비 (1)
196년 서주(徐州)를 상실한 유비(劉備)는, 당시 허도(許都)에 새로운 조정(朝廷)을 열었던 조조(曹操)에게 의탁합니다. 조조는 황건(黃巾)의 난 이후 명성을 얻은 유비를 맞아들였고, 이를 통해 유비는 헌제(獻帝)를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황제와의 만남을 통해, 당시 풍문으로만 떠돌았던 유비와 황실간의 혈연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유비는 자신에게 필요했던 정치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의 냉혹함을 경험하며 성장한 황제의 주변에는, 일부 신하들을 제외하면 정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립무원의 상황 속에서 황제는 종친인 유비의 등장을 크게 반가워하였으며, 조조 또한 유비의 정치적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황제를 통해 그를 좌장군(左將軍)과 예주자사(豫州刺史)라는 관직에 임명합니다.
이 때의 유비는 처음으로 확보했던 서주라는 실질적 세력 기반을 상실한 뒤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야망에 걸맞는 위상을 갖출 수 있게 된 셈이었습니다.
당시 조조는 유비의 정치적 위상이 상승하는 것을 굳이 견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조가 당시 중앙정부의 조직 및 체계를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였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추진하던, 제국 시스템 재건을 위한 개혁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으려 했던 조조의 실용적인 관점이 반영된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조조는 유비가 허도에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바탕으로 자신이 설계한 운영체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 만큼은 철저히 차단하였습니다.
198년경, 조조는 유비와 함께 당시 여포(呂布)가 장악하고 있던 서주를 향한 군사 행동을 개시합니다. 당시 하북(河北)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원소(袁紹)는 기주(冀州)를 장악한 데 이어 유주(幽州)와 청주(靑州)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원소가 머지않아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서주를 향해서도 군사행동을 시작할 것이고, 성공할 경우 원소의 세력 규모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할 것을 우려한 조조는 이러한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동시에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주 정벌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때 조조는 유비가 허도에서 단독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합법적으로 서주자사직을 승계했던 유비가 서주를 회복한다는 명분을 통해 정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서주 정벌에 유비를 동행시켰습니다. 이러한 조조의 결정은, 당시 황제와 유비가 조조를 향한 적대적인 행동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조정 내에서 조조에게 반감을 품은 세력이 유비를 구심점 삼아 조직화될 가능성을 경계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조조는 여포의 세력을 궤멸시키고 서주 전역을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권 아래 두는 데 성공하지만, 유비를 다시 서주목(徐州牧)의 직위에 복귀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차주(車冑)라는 인물을 서주자사에 임명한 조조는 다시 유비와 함께 허도로 귀환했습니다.
허도에서 유비는 자신에게 필요했던 정치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정치적 위상으로 인해 조조의 견제를 받으며, 조조의 운영체제 안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9년, 유비는 예주의 원술을 토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병력을 이끌고 허도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원술의 근거지인 예주가 아닌 서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조조가 임명한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한 뒤, 무력으로 서주자사직에 복귀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제국의 핵심인 중원의 일부였던 서주에 대한 유비의 행동은 조조의 즉각적인 군사 행동을 촉발시켰습니다. 기병 중심의 신속대응군을 투입한 조조는 빠른 속도로 서주의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서주를 되찾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유비는 또 다시 서주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결의형제였던 관우(關羽), 장비(張飛)와도 흩어지게 되면서, 자신의 기반과도 같던 소프트웨어 역량을 상실하게 됩니다.
과거 도겸(陶謙)으로부터 서주목의 직위을 정식으로 승계받았던 유비는 내부 장악에 실패하면서 무기력하게 서주를 잃었던 바 있습니다. 그 후 새로운 제국의 운영체제를 설계하던 조조에게 의탁함으로써 조조가 재건한 제국 시스템 내부에서 성장 기회를 모색했지만, 조조의 운영체제에 갇히게 되며 정치적 기회가 제한되자, 유비는 무력을 통해 서주라는 독자적인 하드웨어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서주의 전략적 중요성과 더불어 높아진 정치적 위상으로 인해 잠재적 라이벌의 위치에 오른 유비를 견제하고자 한 조조의 신속한 대응은 오히려 유비가 세력의 구심점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적 위상은 확보했으나 자신만의 운영체제를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의 부재로 기반은 완전히 상실한 유비.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족 중심의 운영체제를 지키기 위해 조조의 개혁에 대립하고 있던 원소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