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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서 Aug 15. 2019

직장인으로서의 디자이너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은 불가능한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중에서 왜 하필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가 궁금해질 때가 많이 있다. 반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왜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미디어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처럼 멋진 답을 하면 좋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멋진 동기는 없다. 직업선택에 대한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그 길에 다양한 디자이너와 교류를 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어 꾸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어쩌면 우연이라는 것이 반복되면서 나를 운명처럼 이직업의 세계에 이끈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디자인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역시 어릴 때 그림 그리거나, 무엇인가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고 믿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했다. 그렇게 어쩌다, 선택한 전공이.. 시각디자인이었을 뿐이었다. 디자인학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에 입시를 했던 나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 무엇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 채 입학을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작업을 보고.. 앞으로 내가 이런 것을 만들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제품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패션디자인처럼 대중이 사용하는 구체적인 재화를 만드는 일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모눈종이에 서체를 잔뜩 그려놓고, 로고디자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요소를 찾는 과정이 나랑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취업을 빨리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전공이 나랑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취업이 잘 된다는 이야기에... 그저 열심히 배워서 얼른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왜 패키지 디자인을 하려고 했냐는 질문에 솔직한 나의 대답은 취업을 위해서.. 였다. 취업이 잘된다는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학생이었던 나에게 패키지 디자인이나 편집디자인 아르바이트 일이 들어오면서 이런 것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전공을 하고, 취업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전공을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과제를 더 잘하고 싶었고, 일을 하면서 더 좋은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꾸며 시간을 보냈다.






나의 직업선택에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길에 들어가 보니..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디자인을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성숙해졌다.


멀리서 숲을 바라보게 되면, 초록색의 덩어리만 보일 뿐이다. 숲을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초록색만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처음 전공을 시작할 때, 디자인은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어린 시절에 생각했던 디자이너의 역할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전공을 다시 선택해야 하지는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숲을 관찰만 하다가,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서 숲 속을 걸어보니.. 내가 밖에서 본 것과는 다른 세상에 있었다. 숲은 그저 초록색이 아니었다. 그 내부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안에 멋진 길, 그리고 빛을 통해 보이는 여러 가지 풍경들... 내가 차를 타고 지나면서 바라본 숲과는 전혀 달랐다.


1학년 때, 전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관찰자였지만 내가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니, 전공에서 어떤 것들을 공부해야 하는지,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작은 것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디자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선배 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가치관 안에 롤모델이 생기기도 하고, 저런 디자이너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나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도 생겼다.



처음 산을 오르는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하기는 어렵다. 멀리서 바라만 보던 산, 그리고 유명 산악인들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만을 가지고 가치관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그렇게 하나 둘씩, 산을 경험하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나보다 앞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롤모델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목표나 자신의 직업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무턱대고 산을 오른다고, 모두가 가치관이 정립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길을 걷게 되어도, 어떤 이는 작은 현상이나 요소를 통해 사유를 하지만,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만 걷는 사람은 걷는 그 길에 대한 과정보다는 목표지점만을 보고 걷기 때문에 가치관을 형성하기 어렵다.





왜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자소서의 한 항목에 대한 답이 아주 멋진 말들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신이 디자인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앞으로 디자이너로써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하면 된다. 그러나 평소 생각을 다시 정리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왜 디자인을 하려고 하는지.. 질문을 한다. 대부분의 대답이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 데, 그냥 선택한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라서...라는 대답과 그냥 관심이 있어서요.. ,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었다. 기왕 하게 된 전공이니,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관심이 생기고, 재미가 있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직업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많은 생각들로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기준과 철학이 만들어진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디자이너가 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할 것인지 막연했던 것들을 하나씩 구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전공과목이니까.. 프로젝트를 해야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완성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사유를 통해 디자인과 함께 사고도 성숙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직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자소서에 그런 질문이 있었나?"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지원동기는 직업의 본질에 대한 지원자의 직업관과 비전을 살펴보기 좋다. 

 

최근에 조금 더 노골적으로 왜 취업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자소서를 작성하는 학생들이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질문이다. 취업을 하는 이유를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직업이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돈을 버는 수단 외에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다.


직업은 의식주를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어떤 이의 글을 통해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그 글의 제목이 "직업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라는 것이었다.


직업을 통해서  꿈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욕심이 될까?


이런 주제를 가지고 직장을 다닐 때, 회사동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직업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는 반대로 직업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매우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한 달 급여를 받기 위해, 하루의 절반 정도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잘 완성된 결과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만약 디자인 결과물이 곧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 결과물을 완성하는데, 시키는 업무만을 완성하는 디자이너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해서 만드는 결과물은 큰 차이를 보인다.






나는 회사가 디자이너로써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디자인 방향과 완성도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은  조건이 좋아도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직장을 이직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즐겁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와 회사의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곳이 나의 직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었다.


디자이너로써 커리어를 잘 만들어가려면 어떤 회사를 가는 것이 좋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그 사람이 어떤 디자이너로써 커리어를 쌓고, 앞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만들고자 하는지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진다. 연봉이 높고, 칼퇴근을 하는 회사가 모두에게 좋은 회사는 아니다.


내가 만나본 많은 디자이너들 중에는 유명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실제 자신이 하는 업무가 디자인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자신이 디자이너인지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만약 직장인으로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한다면 만족할만한 삶이겠지만 실제 그런 조직에서 모두가 만족감을 표하지는 않았다.




어떤 분야에 진입을 해서 공부를 하고 직업으로써 일을 하게 된다면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그 일을 수행하는 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주를 해결하기만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이 아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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