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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서 Jan 26. 2020

디자인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적성과 직업

디자인 수업을 하다 보니, 디자인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둘 고민을 하는 학생들, 혹은 다른 일을 하다가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총 8년의 시간 동안 디자인 공부를 한 학생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디자인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려고 해요." 

디자인을 그만하려고 하는데, 오랫동안 디자인 공부를 뒷바라지 해온 부모님의 반대로 갈등이 심해져서 힘들다는 것이다.


최소 이 학생의 경우, 디자인을 10여 년 이상을 해왔는데, 왜 지금 와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고민을 하는 것일까? 나에게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에게 따뜻한 위로를 하기는 어려웠다.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만두는 것도 시작하는 것만큼의 용기가 필요한데,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 어리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다른 일을 시작하는 일도 모두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었다. 나의 위로를 통해 용기를 얻을 생각을 한 그 학생은 실망을 했겠지만, 그 학생이 나의 위로까지 보태어 자기애에 빠지기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적성의 의미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적성검사를 통해 미래 직업에 대한 결과지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적성과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을 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여러 가지 평가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최근에 TV에서 어른들의 적성 찾기 실험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적성의 의미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장된 포장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성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부터가 궁금해졌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적성이란 일정한 훈련에 의해 숙달될 수 있는 개인의 능력,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나 능력의 발현 가능성을 말한다고 한다.


적성이라는 것은 직업의 숙달 가능성을 예측하는 선천적인 능력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노력에 의한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적성이 선천적 능력이라고 믿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성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그렇다면,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해서, 대학 전공까지 한 학생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약 10여년의 시간 동안,  디자인 공부를 했지만 직업인으로서 잘 준비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한다.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판단하기에 10년의 시간은 너무 길기 때문이다.





적성이라는 판타지

우리는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15년 이상 디자인을 하고 있는 나는 그렇다면 엄청난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나서 오랫동안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나도 선천적인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미술을 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뛰어난 편이었지만, 전공을 하려고 모인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뛰어나지 못한 그저 그런 눈에 띄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입시 미술학원에서 충격을 받았던 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내가 뛰어난 선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학생들이 모인 곳에 가니, 내가 가진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입시를 늦게 시작한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늘 뒤처지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


하위 그룹에 속하게 되었을 때부터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많이 되면서, 내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디자인을 내 실력으로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등등 내적인 갈등 속에서 사춘기 시절을 어리석게 보냈었다. 


시기가 달라서 그렇지, 나와 같은 이런 경험은 줄곧 상위그룹에만 속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경험을 했을 것이다. 다만, 그런 갈등 속에서 계속 내가 가야 할 길을 밀고 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종종 경험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적성이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전공에 대한 직업의식을 갖고 후천적인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모두 그렇지만, 디자인도 역시 많이 만들어 본 사람이 잘하고, 많은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지 잘할 수 있다.


대학 4년의 시간은 직업으로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학습하고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는 기간이다.

적성은 선천적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후천적인 학습, 직업인으로서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지의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업인으로서 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인 것뿐, 선천적인 능력을 핑계로 더 이상 자신이 준비가 되지 않아 있는 것을 합리화시키지 않아야 한다.




후천적인 노력

다른 일을 하다가 디자인 공부를 해서, 진로를 변경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나를 많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는 학생도 있고, 현재 자신의 전공이 맞지 않아 디자인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새롭게 디자인을 시작하는 학생들 중에는 정말 디자인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을 도피하듯이 디자인을 선택한 경우도 많이 있다.


국비지원으로 6개월간 프로그램 배우고, 자격증을 따서... 나를 찾아오지만,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전공 공부를 했던 것과 같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선택했다면, 새로운 선택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도피하듯이 선택한 디자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 중에는 또 다른 자신의 적성이 맞는 일을 찾아서 디자인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수는 있을까? 조금만 힘든 일에 부딪히면 적성을 탓하며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결국 적성만 찾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낭비만 하고 보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성인이라면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일을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포기와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자신이 새로운 선택을 했다면,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직업의식을 제대로 갖춰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보는 멋진 이미지들을 보고,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을 한다면 디자인 공부도 대학에서 전공으로 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당연히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성이 맞고 안 맞고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우선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만약 정말 다른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전에 했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말자. 

평생을 자신의 진로 찾기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에게는 늘 그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핑계가 있었고, 자신이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0대라는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20대에는 어떤 도전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경험을 반드시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직업의 잔인함

디자인이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특히 더 잔인하다. 다른 직업과 다르게 결과물을 통해 회사 내부의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더 크게는 대중의 평가를 받는 직업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회사에서 동료들과 같은 프로젝트를 완성해서 벽에 붙여 공개적으로 평가를 받는 시간은 오금이 저리는 시간이었다.


그 뒤로 디자인을 할 때마다 공개적인 내부 평가는 이루어졌고,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작업을 잘하는지... 누가 일을 못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오픈되는 직업이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업무 능력이 떨어지면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위축되고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내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누가 작업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들 자체가 디자이너의 실력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사회생활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디자인을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통해 이런 공개적인 크리틱을 경험해야 했고, 심지어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유관부서 사람들의 크리틱까지 수용해야 했기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심했었다. 공개적으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은 특히 더 잔인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크리틱을 모두 수용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강인함을 갖춰야지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을 수행해낼 수 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으며, 상사에게 디자인을 잘 못한다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고 해고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작업을 하는 사람의 결과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은 밖에서보는 것 만큼 멋진 일은 아니다. 


이런 잔인한 일이 선천적으로 잘 맞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가 어려운 과정을 잘 극복해 나가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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