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딜레마
최근 퇴사를 하고 다른 삶으로 전향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분명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분명 휴식 이후에 찾아오는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감히 직장을 퇴사한 뒤, 잠시 나를 돌아본 뒤에 자신이 원했던 삶으로 잘 돌아가게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은 그 이후의 삶이 뒤엉켜 자신이 원치 않는 현재의 모습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나를 찾아 오는 학생들 중에는 신입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전 직장 퇴사 이후, 재 취업이 되지 않아 고민 중에 나를 찾는 경우도 많이 있다.
분명 인생에서 쉼의 시간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 책 등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에 모두들 바쁜 현재의 삶에서 자신을 돌아볼 쉼의 시간을 갈망하고 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첫 직장은 고달프고 지친 시간들의 연속이었고, 회사를 멋지게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큰 고민을 하지 않고 퇴사를 했다. 쉼을 통해, 나를 더 개발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현재의 직장보다는 더 나은 곳으로 내 삶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직은 쉽지 않았고, 뜻하지 않게 나의 시간들은 허송세월을 하거나 이러다가 현직에 복귀를 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까지 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둔 이후,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디자인 회사를 통해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계속 이어져서 나를 찾아왔고, 박봉의 월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 그때를 뒤돌아 봐도, 내가 가장 후회하는 순간 중에 하나는 첫 직장을 아무 대책 없이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단지 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나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도 컸지만, 내 삶은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내가 첫 직장을 그만둔 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는 있었다. 다만,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더 나은 삶으로 나를 점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감정적이었고, 현실에 지쳐있었기에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찾고 싶었다.
1. 에이전시 업무의 특성상, 대기업 갑질에 지쳐있었고, 그런 갑질은 늘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로 이어졌기에 쉬어가는 시간을 갖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2. 이런 생활의 연속은 회사에만 있어도 짜증이 났고, 모든 사람들이 싫을 정도로 회사라는 공간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었다. 이직을 하려고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었다.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회사에서도 면접을 보자는 제안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3.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급하게 취업한 회사였기에 충분히 이직을 준비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내 삶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를 안고 회사를 멋지게 떠났던 나는 이것저것 시도를 하다가 차선책으로
또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스물아홉이었고, 서른을 앞두고 뭔가 조급한 마음이 앞섰고, 현재의 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학위라도 더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학교를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원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수업은 모두 시시했고, 인맥을 쌓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은 허상이 되었으며, 석사학위 하나 더 있다고 나를 다르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되었다.
잠시 쉬어가는 것은 인생의 전환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회를 만드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극히 드물다. 책이나 유튜브에서 본 사람들은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드는데, 나에게는 왜 그런 계기가 없었던 것일까....
비움 속에서는 미래에 대한 설계,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와는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쉬면서 바라본 세상은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찾고, 다짐을 하는 순간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쉼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보여주기에 급급한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의 풍경이 단순히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보다는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내가 바라본 쉼의 시간 속에서 환경은 어땠는지 사색을 깊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쉼이라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첫 직장을 어이없게 그만둔 이후로 나의 커리어가 엉망이 된 후, 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쉼의 시간에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쉼을 갖는 공간 속에서 바라본 시선, 그리고 사색을 통해 얻은 결론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노력을 한다.
현재의 직장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 직장을 옮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면, 쉼의 시간은 짧게, 그리고 다짐은 단호해야 한다. 이직은 공백기가 길 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것은 현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바로 이직을 하는 것이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다면 쉼의 시간은 짧아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간 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이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을 자주 만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한 달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 달간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특정 관광지의 아름다움을 나열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직 준비는 첫 취업준비보다 더 어렵다. 특히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직을 해야 한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이직이 점점 힘들어져서 경력단절이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하기 위해 수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회사까지 그만두고 이직 준비를 한다면, 고시공부를 하듯이 나의 모든 것이 바뀌어 있을 정도로 단호한 결심을 해야 한다.
시간이 많다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허송세월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고시생처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만큼 취업은 쉽지 않을뿐더러, 반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져 웬만한 실력으로는 뜻하는 바를 이루기는 어렵다.
그동안의 나를 내려놓고, 이직 준비를 위해 모든 시간을 다 쏟을 정도의 결심을 갖지 못한다면 이직 준비를 위해서 쉼의 시간을 갖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결국 당신은 그렇게 시간을 버리고, 이전 직장과 유사한 곳으로 다시 이직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여행을 1년 다녀오거나, 다른 공부를 해본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에 크게 반대를 하는 일은 없지만, 딱 한 가지 워킹홀리데이만큼은 반대를 한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하는 경우,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글로벌 경험을 쌓는다는 목적을 대부분 이야기하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었고, 제대로 된 목적을 달성한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곳에서 육체노동과 마음고생으로 지쳐서 돌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글로벌 경험을 쌓기에 시골 농장은 폐쇄적이다. 만약 워킹홀리데이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물론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워홀의 경우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1. 영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냥 어학연수를 떠나고, 공부에 집중하는 편이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된다. 고된 육체노동과 함께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돈이 없다면 한국에서 그냥 공부를 해도 된다. 국내에서도 많은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해외에서 많은 외국인 강사들이 과외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만 영어공부를 한다고 해서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2. 글로벌 경험이 목적이라면,
글로벌 경험은 단순히 해외여행을 한다거나, 해외 농장에서 일했다고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외 기업에서 인턴을 해봤거나, 실제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만이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영어권 국가에 있다고 글로벌 인재가 된다는 논리라면, 영어권 국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인재로 모든 기업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대다수의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좋은 기회를 버리고...
해외여행과 워홀을 했다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워홀을 반대하는 큰 이유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녀보다가,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워홀을 다녀올까...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주변에 많다. 워홀을 그렇게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녀와서 그 풀리지 않던 실타래를 결국 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서른 즈음이 되어, 재취업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퇴사하니, 괜찮던데요... 등등의 퇴사를 종용하는 편안한 삶에 대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 퇴사하고 작가가 된 그들은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한 여러분은 정말 괜찮은가...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시작한다면 좋지만, 다시 재취업을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은 더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매달 25일이면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돈이 끊기고 나면 불안해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서류를 넣은 회사에서 답이 없다면 초조함은 배로 늘어날 것이다.
가장 달콤한 물은 힘든 일을 마치고 마시는 물이다. 쉼이 가장 달콤한 순간도 재직 중에 잠시 휴가를 떠난 순간이다. 쉼의 뒤에 내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달콤한 휴식이 될 수 없다.
퇴사를 하려거든 자금계획부터 시작해서 재취업준비에 대한 계획까지 모두 철저하게 짜고 그 계획을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매일 출근하던 규칙이 사라지면, 매일 출근하던 규칙이 사라지면, 아침 6 시에 일어나던 사람도 정오가 지나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늘어지기가 쉽다.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기는 어렵지만, 편한 것에 익숙해지기란 너무 쉽다는 점을 기억하자.
퇴사를 하고 일 년이 지나서 나를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 총공백기가 약 1년 반... 왜 그렇게 오랫동안 쉬었냐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고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흐른다.
회사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경력을 계속 쌓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회사 내부에 서열문화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경력이 없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매우 크다.
아무리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주니어 급에서는 경력을 쌓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이상한 회사에서 경력을 오랫동안 쌓으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쉽지 않은 일을 잘 해내야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이상만 높고,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상이 높다면 지금 내가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까지의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통해서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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