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단어가 가지는 진짜 의미
“저는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레퍼런스를 잘 활용합니다.”
아마 나는 이 문장을 수없이 본 면접마다 이야기했던 것 같다. 1시간에서 2시간 사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둔 정형화 된 문장들. 그 많은 문장들 중 하나의 문장이 바로 “저는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다만 내가 경험한 경험과 레퍼런스를 잘 활용합니다.”였다.
기독교의 중요한 3가지 단어가 있다면 ‘믿음, 소망, 사랑’이다. 이 세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갔는데 그건 바로 “행위를 하는 나 자신보다, 이 행위의 대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 무언가를 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무엇을 믿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잘 소망하는 사람인가 보다 무엇을 소망하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멋있는 사랑을 하고,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열렬히 사랑하는지보다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을 감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어디서나 공통적인 특성을 가져야 한다면 이 세 가지는 비단 기독교에 한정되지 않아도 같은 특성을 가진다. 사랑은 하는 것 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느낀다고 정의하는 많은 종류의 사랑은 사실 ‘받는다’라는 단어에 적합할지 모른다.
이 세계에는 평소 연관시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명제가 결합하면 생각보다 깊은 의미들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근육은 다치면 잘 회복이 되지 않는다.”라는 명제에 “심장은 근육이다.”라는 명제가 만나면 각각이 가진 명제보다 깊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나는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레퍼런스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야”라는 문장과 “사랑은 행위보다 대상이 중요하다”라는 문장이 만나면 나의 그럴듯한 직장생활이 얼마나 부끄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는지 드러난다.
기독교의 중요한 명제 중 하나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대상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바라봄으로써 필요를 발견하는 행위를 우리는 무언가를 ‘사랑한다’라고 한다.
백오피스 조직의 고객은 회사의 멤버들이다. 멤버들의 ‘일 경험’을 만드는 매니저의 일은, 고객은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들이다. 내가 일을 사랑한다면, 정말 동료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 그게 동료를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레퍼런스를 잘 활용한다는 나는 동료들을 사랑함으로 그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보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환호받을 수 있는 것”, “내가 빛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누군가 그들의 동료를 위해 만들어 놓은 무언가를 나는 ‘레퍼런스’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내가 얼마나 잘 사랑하는 사람인데”를 외치며 살아왔었다.
그게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레퍼런스를 잘 활용합니다.”라는 문장이 가진 진짜 의미다.
물론 이것은 반성의 글이다. 그러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내가 변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무조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뻔뻔함보다는 “사실 나라는 인간이 이래.”라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타인을 정죄할 수도 없고, 내게 막 대하는 사람에게도 “나 역시 같은 사람이니까”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을 가져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도 한동안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 글을 읽으며, 작심삼일 정도의 다짐을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