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식집사의 좌충우돌 성장일기
식물을 키우다 보니 ‘발견과 성찰’이라 쓰고 ‘의미부여’라 읽는 어떤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다. 새소리를 듣고 ‘노래’라느니, ‘울음’이라느니 하는 것은 결국 작중화자의 감정이라는 국어시간의 배움처럼 결국 이게 ‘나의 감정’이라는 걸 깨닫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에 있던 식물이 몽땅 죽어버렸다. 결혼하며 선물 받아 애지중지 키우던 식물도, 회사에서 죽어 버리려던 식물을 집으로 데려와 살려놓은 나무도, 큰 마음 먹고 샀던 화분에 이쁘게 옮겨놓은 식물들까지. 10여 가지의 식물중 간신히 살아남은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무관심’이었다. 식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손 쓸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물 고문으로만 식물을 죽여왔던 내가 이제는 굶겨 죽이는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는 순간이었다. ‘1주일에 한 번’이라고 식물에 꽂혀있는 작은 푯말이 무색하게 2-3달을 물 한 번 주지 않았으니 살아남은 식물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 시기에 우리는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한 명은 몸이 아팠고, 한 명은 마음이 아팠다. 일단 ‘우리’부터 살아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봄이 오고나서야 제대로 된 집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봄이 되서야 ‘밥을 할’ 여유가 생겼다. 결국 우리를 병들게 했던건 ‘나를 향한 나의 무관심’이었다.
봄이 찾아오고 살아남았지만 시들했던 식물들이 회복하며, 우리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쯤 나는 가드닝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사라진 초록색을 다시 살리기위해 몇 개의 식물을 다시 사면서 취미가 되었다.
한 동안 식물들은 잘 자랐다. 지나친 관심으로 죽이고, 무관심으로 죽이며 배운 경험들이 중간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흙이 마른 것을 보고 식물에 듬뿍 물을 준 다음날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비가 많이 오지도, 그렇다고 해가 나지도 않는 이상한 장마가 오래 지속됐다.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모든 나무의 잎이 타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도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과습’이었다. 1주일 이상 해를 못본 식물들은 아무리 바람을 틀어줘도 소용이 없었다.
해를 많이 봐야 하는 식물들이 먼저 쓰러지기 시작했다. 젖은 흙이 마르지 않고 심한 친구는 화분 밖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손댈 수 없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괜히 손대기 보다 좋은 날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GPT마저 기다리라고 했으니 별 수 없이 기다렸다.
그 시기에 나 역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과 해결되지 않는 일들. 억울함과 변명이 반반씩 섞여 나를 갉아먹었다. 광복절을 앞두고 오랜시간 해온 이야기가 마무리 되며 모든 걸 멈추기로 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 에서 ‘자살’은 해결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문제를 ‘파괴’하는 일은 결국 ‘해결’되지 않고 파괴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멈추기로 마음 먹은 날 나는 이 ‘카뮈의 자살’을 떠올렸다.
날이 선선해지고, 살랑이는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자 식물들도 건강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식물에서 벌레가 하나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던 식물에서도 같은 벌레가 하나 나왔다. 식물에서 처음 본 벌레에 잔뜩 긴장해 여러가지를 찾아보았다. 모든 AI에 찾아보고, 검색해보고, 구매처에 물어봐도 왜 생기는지 몰랐지만 대부분의 답은 “큰일 났으니 빨리 무언가를 해라” 라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벌레가 발견된 모든 식물들을 빠르게 분갈이를 했다. 그런데 그 때 부터 식물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결국 수경재배가 가능하다는 식물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그렇게 죽은 식물들을 정리하고 몇 일 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식물에 벌레를 보았다. 집에서 본 벌레와 같은 벌레였다. 식물을 잘 아는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흙속에서 곰팡이나 죽은 유기물들을 먹고사는 이로운 벌레였다. 이런….
그 시기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 깨닫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지난 여름의 무기력을 겪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결국 '무지'가 나 스스로를 옥죄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물을 듬뿍 주고 한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적당한 물과 바람, 해만 있으면 식물은 스스로 잘 자란다.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