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만큼 내 땅이다

by 이국종

한동안 알고리즘에 의해 인스타에도, 유튜브에도 이석훈 씨의 감탄하는 리액션과 함께 “헤맨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정윤 님이 들려준 이야기였는데,

“(연구에서)성공한 실험(경험)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커리어가 실패했다고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다. 연구실에서 정말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그 주제와 실험에 대한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항상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일에 대한 결과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좋은’과 ‘나쁜’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뉘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 결과들도 살펴보면 명확하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결과의 질’이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서 ‘질’은 결국 내가 이 일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느냐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좋은 결과임에도 별로 배운 것 없이 흘러간 일이 있고, 나쁜 결과임에도 많은 것을 배우며 흘러간 일이 있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의 질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결국 좋은 목표가 좋은 결과의 질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목표’가 이끌어내는 것은 ‘좋은 결과의 질’이지 ‘좋은 결과’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좋고 나쁜 결과는 다시 ‘좋은/나쁜 결과의 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목표가 ‘좋은 결과의 질’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내지만 ‘좋은 결과’를 필연적으로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목표는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좋은 목표는 결국 내가 얼만큼 ‘헤맬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가이다. 단지 내가 익숙하고, 내가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내가 불편해지는 일이라도 좋은 결과를, 좋은 결과의 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지난 겨울 당뇨 전단계 판정을 받고 혈당 관리를 시작했다. 여러 방법을 병행했지만, 내가 가장 꾸준히 한 건 식후 산책이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갔다 오기’, ‘어디를 찍고 오기’ 같은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렇게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최단거리와 언덕이 적은 길만 찾게 되었고, 자주 가는 코스는 금세 지루해졌다. 결국 산책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갈 만한 코스도 바닥났다.


그래서 목표를 ‘식후 한 시간 걷기’로 바꿨다. 이때부터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로 들어섰고, 상도동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과 가게들을 만났다. 한 시간 동안 걷다 보니 어느 날은 노들섬까지 다녀오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용산역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상도역에서 출발해 노들역-노량진역-대방역-보라매역-당곡역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 걸으며 언덕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걷는 동안 하루 평균 만 보가 어느새 3만 보, 4만 보로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비교적 빨리 혈당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좋은 목표’ 덕분이었다. 목표를 바꾸자 길이 달라졌고, 길이 달라지자 내가 보던 세계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 경험이 걷는 재미를 만들었고, 그 재미가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다시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로 돌아가보자.


어느 무협 소설에서 스승은 검을 사용하는 제자에게 다양한 무기를 주며 모두 익히라고 이야기한다. 제자는 이해할 수 없는 스승의 지시를 묵묵히 따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스승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냥 검을 익히는 것과 그럼에도 검을 익히는 것은 다르다.” 라고


많은 길을 헤맨 후에 다시 제자리에 설 수도 있다. 수 없이 많은 시도들을 해본 후에 다시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듯이, 같은 선택이라고 해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같은 결과의 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KakaoTalk_20250916_193500283.jpg


작가의 이전글“그냥 하는 거야.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