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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구 Oct 07. 2015

타이포그래피, 글자의 표정

각기 다른 표정과 스토리가 담긴 타이포그래피


글자꼴에도 표정이 있다. 각각의 글자꼴은 사람의 얼굴과 같다. 화난 표정의 글자꼴은 화난 감정을 전달하고

행복한 표정의 글자꼴은 행복한 감정을 전달한다. 사람들이 '진지해서 궁서체'라는 표현을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글씨꼴 표정과 감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글자 표정과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글자꼴 시각 특징에서 느낄 수도 있지만, 삶의 경험 안에서 학습된 것들이 축적된 것이다. 

궁서체를 예로 들면, 궁서체는 진지한 상황에서 주로 등장한다. 장례식장의 근조화환, 고위직 명패 등에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궁서체가 등장하는 상황은 대부분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가 진지하기 때문에 궁서체를 쓰지는 않는다. 보고서 내용이 진지한 내용이라 궁서체를 쓰고 싶더라도 회사가 약속한 양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도 같은 양식에 같은 글자꼴을 사용하도록 교육받는다. 보고서 양식에 포함된 글자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규범이 되고 회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보고서의 무게감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표정을 가진 글자꼴이 되는 것이다. 즉, 글자꼴의 표정은 주관적인 경험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범 속에서 형성된다.

글자꼴의 모양은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반듯하고 직선으로 이뤄진 모양이 있다. 두 번째, 글자 끝에 살짝 꼬리가 달린 신문이나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양이 있다. 세 번째로 그 외 다양한 글자꼴들이 있다. 첫 번째 글자꼴은 IT 산업과 함께 등장했다. 따라서 도시적인 정보를 전달할 때 어울리는 표정을 가지고 있다. IT계열, 디자인 잡지에 주로 사용된다. 두 번째 글자꼴은 손글씨 혹은 돌에 새겨진 글자 모양에서 유래됐다. 감정을 전달하는 소설이나 시, 신문에 주로 사용된다. 그 외 수 많은 형태의 글자꼴들은 생김새가 매우 개성있고 다양하며 튀고 싶은 장소, 특히 간판과 같은 장소에서 활용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주연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는 누가 더 주인공에 어울리는지 쉽게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예로 들면, 한효주와 박서준의 느낌, 이진욱과의 느낌과 유연석의 느낌이 모두 미세하게 달라 관객마다 선호하는 조합이 다르고 조합에 대한 감정이 모두 다르다. 모두 같은 ‘우진’과 '이수'의 조합을 그리고 있지만 '뷰티인사이드'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아 주연이 뚜렷한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영화와 가장 어울리는 조합은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개인별로 아니다 싶은 조합은 금방 골라낼 테지만 최고의 조합은 선택하기 어렵다. 글자꼴도 그렇다. 첫 번째, 두 번째 덩어리 안에 비슷하게 생긴 주연급 글자꼴들이 잔뜩 들어있다. 따라서 정보와 어울리는 표정의 글자꼴을 골라내기 힘들다. 대부분 어느정도 어울리는 글자꼴이고 작고 섬세한 표정의 디테일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표정은 주관적이다. 얼굴이 웃는 상(狀)인 사람들은 어렸을 적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난 웃지 않았지만 앞에 있는 사람이 웃었다고  생각하면 난 웃은 것이 된다.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하다 보면 이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납득할만한 의사소통방식을 익히게 되고 조절을 하며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글자꼴 표정을 읽는 것은 글자꼴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다. ‘타이포그래피 정리’ 시리즈는 글자꼴의 뿌리를 찾아다니며 글자꼴이 태어날 때의 상황을 통해 그 안의 주관적인 속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글자 속성과 시각형태를 연결하여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납득할 만한 글자꼴의 표정을 학습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의사소통 과정이다. 기초 디자인 요소인 글자 표정의 디테일을 놓친다면 내가 전달하려는 정보는 왜곡된다. 글자꼴에는 표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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