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시간의 상관성
하늘 아래 땅이 있다. 몇십 시간의 이동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예상보다 길어진 이동시간은 기분 좋은
시간이 아니다. 하루만 참아보자는 불편함은 반나절이 더 늘어났고, 승차감 최악의 TATA자동차는 엉덩이와
허리를 끊어버릴 듯이 달리고 있었다. 자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뜬눈으로 덜컹거리며 달렸고,
똑같은 풍경은 지루했다. 한참 지쳐있을 무렵, 떨어질 듯한 낭떠러지에서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의 얼굴은 까맣게 타있었다. 아기가 있는 여인들은 그늘에
아기를 뉘어놓고 햇빛에 나가 돌을 걸러냈다. 도끼자루와 삽 하나만 가진 남자들은 문명의 도움 없이
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며, 기약 없이 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벤은 천천히
만들어진 도로 위를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느린 곳이었다. 가지 않는 시간을 원망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정오의 햇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
억지로 잠을 청하는 나를 헤집었다. 헤집혀진 사이로 정오의 햇빛이 들어왔다. 사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시간은 똑같이 가고 있었고, 일찍 도착한다 한들 달라질 것은 크게 없었다. 사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출발과 함께 반나절의 시간이 같은 자리에서 흘렀지만, 25시간이나 31시간이나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던 고개를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풍경이 나왔다. 하늘은 끊임없이 푸르렀으며, 탁 트인 풍경은 끊임없이 펼쳐졌다.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는 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는 것은 당연한 속도였다. 준비되지 않은 도로를 지나갈 때는 천천히 달려야 했다.
나는 행동이 빠르지 않다. 웬만하여서는 뛰지 않고, 밥도 천천히 먹고, 걸음도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다닌다.
개를 무서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개가 뒤에서 쫓아오지 않는 이상 빠르게 움직인 적이 없었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20대 출발도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 따라서 또래보다 대학도 늦게 가고
군대도 늦게 다녀왔다. 내 삶을 지쳐본 사람들은 갑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이 원래 그런 것을
하며 웃어넘기고는 했다. 물론 나라고 조급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늦은 것을 조금이라도 따라잡고자
토익학원도 다녀보고 컴퓨터 학원도 다녀봤으며, 공모전에도 열심히 기웃거렸다. 그리고 여행도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남의 속도에 맞춰보고자 시작한 인도 여행은 결국 본래
나의 속도로 돌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