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함께 온 손님
지난 4월 초, 이사를 했다. 3시간가량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고, 심지어 걸어서도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2시간, 일주일에 10시간의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이사 전, 나는 이 시간들로 무엇을 할지 설레며 계획을 세웠다.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더 일찍 일어나 여유로운 아침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은 분명 늘어났는데, 정작 내가 기대했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문제점을 찾아보자면 문제는 새로운 집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집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반지하다. 처음엔 단순히 적응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집 안의 어둠은 나를 점점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면 될 일이었지만, 그조차 하기 싫어질 만큼 의욕이 사라져 갔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처음엔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는 정도였다. '어차피 출근 시간이 짧아졌으니까'라는 핑계가 있었다. 그다음엔 퇴근 후 책 읽기를 그만두었다.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매일의 변명이 되었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여유 시간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할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습관이 생겼다.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내일은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지만, 내일 역시 오늘과 다르지 않았다. 선택적으로 나타나던 나태함은 어느새 나의 일상 전체를 잠식해 버렸다. 시간은 분명 늘어났는데,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불안감이 찾아왔다. 원래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의지력으로만 해결하려다가 몇 번 실패하고 나니,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기로 했고, 마그네슘 같은 영양제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환경의 영향을 인정하고, 집 안에서도 조명을 밝게 하는 등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오랫동안 놓아두었던 키보드를 다시 두드리며, 하루에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글을 쓰면서 내 상황을 객관화하고, 지금까지의 변화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언제 예전의 활기를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태함이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듯, 그것을 이겨내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 하나씩 작은 습관들을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나를 덮고 있던 무기력함이 서서히 걷혀갈 것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물리적 공간이 정신적 상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