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의 향상 또는 역설 그리고 온기
요즘 나는 AI를 정말 많이 쓴다. 텍스트부터 이미지까지, 글쓰기부터 리서치까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AI를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많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며.
AI는 이제 나에게 도구가 아니다. 협업자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조력자'에 더 가깝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ChatGPT를 켜고 "오늘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볼까?" 하는 질문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AI들을 각자의 특성에 맞게 활용한다. 마치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팀원들과 일하듯, 역할을 나누어 협업한다.
ChatGPT와는 창의적인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이번 콘텐츠에는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까?", "이런 실험을 해보려는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을까?" 같은 큰 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ChatGPT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법을 제안하는 데 탁월하다.
큰 틀이 잡히면 Gemini를 통해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들어간다. 관련 자료나 최신 트렌드, 데이터 등을 찾아보고 정리한다. 물론 중요한 것들은 직접 실험해보기도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Claude와 함께 글을 정리한다. 수집한 정보와 아이디어들을 하나의 완성된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이 필요하면 Canva의 AI 기능이나 Genspark을 활용한다.
사실, 이 AI들이 각기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는 명확한 '팩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듣고, 직접 써보면서 나름의 판단 기준이 생긴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AI가 더 뛰어나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를 기준 삼아 선택한다는 점이다.
AI를 활용하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속도'다. 일의 효율이 압도적으로 올라갔다. 자료 조사, 구조 설계, 초안 작성까지 모두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끝난다. 예전에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며칠씩 걸렸던 작업들이 이제는 몇 시간 만에 끝난다. 누군가는 그걸 '생산성 향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정말 이 일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AI는 논리적으로 정리된 결과물을 너무나도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너무 매끄럽다 보니, 오히려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자주 불안해진다. 겉보기에는 완벽하지만, 정작 나는 이 내용을 '진짜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AI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따라가다 보면 일은 쉽게 끝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이해했는지,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 구별이 안 갈 때가 있다. 마치 남이 써준 숙제를 베끼는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무언가 와닿지 않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과감하게 지운다. 진정성 없는 글은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의미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과감히 제외한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정보를 제공해도,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와닿지 않는다면 콘텐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전달하려면 나부터 그 내용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내 것으로 만든다. AI가 정리해 준 정보라도 반복해서 읽고,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 내 경험과 연결 지어본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그 정보가 내 것이 된다.
반드시 내 경험과 감정을 더한다. AI가 제공하는 건 결국 데이터와 논리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감정과 스토리다. 내가 직접 겪은 시행착오, 실패담, 깨달음을 추가해야 진짜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된다.
AI가 일의 속도를 높여주는 것은 분명한 이점이다. 하지만 빠르게 결과를 얻을수록, 목적과의 거리는 때로 더 멀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생산성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내용은 만들어졌지만, 그 내용이 진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확신은 점점 줄어든다.
광고판을 봐도, 인스타그램 피드를 봐도 묘하게 비슷한 느낌. 색감도, 구도도, 문장도. "아, 또 AI가 만든 거네" 사람들의 손가락은 더 빠르게 스크롤을 넘긴다.
AI 콘텐츠의 가장 큰 함정은 동질화다. AI 생성 비주얼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획일화다. 서로 다른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톤 앤 매너, 비슷한 컬러 팔레트, 비슷한 구도를 가진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속도는 올랐지만, 고유성은 사라졌다. 어느새 '다 비슷한 브랜드', '다 똑같은 말'이 되어버린다.
더 심각한 것은 소비자들이 이미 AI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 또 AI로 만든 거네'라는 생각과 함께 스크롤을 넘기는 손가락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바로 휴먼터치다.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정보 그 자체가 아니다. 정보를 '이해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 주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도,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 본 사람의 이야기에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신뢰성이고, 진정성이며, 공감이다.
나는 여전히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속에서 느낀 감정과 시행착오, 그것이 콘텐츠의 깊이를 만든다. AI가 줄 수 없는 '온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예를 들어, AI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워크플로우를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워크플로우를 적용해 보면서 겪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 해내고 난 후의 뿌듯함 같은 건 AI가 만들어낼 수 없다.
내게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맡기는 의존적 관계도 아니다.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는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
AI는 내가 놓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 주고, 정보 수집의 속도를 높여주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과 선택, 그리고 감정과 경험을 더하는 건 여전히 내 몫이다.
이런 협업 방식 덕분에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일'에 쓸 수 있게 되었다. 단순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것들, 즉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어떤 감정을 담을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연결될 것인지에 집중할 수 있다.
AI를 잘 활용한다는 것은 단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AI가 주는 빠름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결과물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진짜로 사람의 마음에 닿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해 보는 것이다.
AI 시대에 콘텐츠 기획자로서 살아남는 비결은 기술의 효율성과 인간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되 AI에 의존하지 않기.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하되 내 경험과 감정으로 재해석하기. AI의 속도를 따라가되 깊이를 놓치지 않기.
이런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때로는 AI가 제안하는 '쉬운 길'을 거부하고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에서 나만의 고유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나는 지금도 AI와 함께 일하지만, 그 모든 과정의 마지막은 결국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AI는 나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AI와 함께 사고하고, 질문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다시 정리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콘텐츠만이 진짜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AI와의 협업은 아직도 실험 중이다. 새로운 AI 도구들이 계속 나오고, 기존 도구들도 계속 발전한다. 그에 맞춰 내 워크플로우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중요한 건 도구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 진정성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은 그대로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빠르게 만들기보다, 진짜로 닿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AI와 함께, 하지만 나의 방식으로, 한 문장씩 정직하게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