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행예견자의 끝 혹은 시작?

by 이재무

지금 이 순간 그는 혼란스럽다.


아래를 바라보니 무서워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지금 드는 감정이 두려움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두렵기만 하면 이해가 참 쉽겠는데 온갖 감정이 뒤섞여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데 겁나기도 하고, 허망하다는 생각과 묘한 쾌감까지 번갈아 들쑥날쑥한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눈 앞에 모든 것이 영화 세트장처럼 보인다.


다만 아까부터 막연하고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뇌부터 몸 안의 모든 내장을 계속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몸 안 이곳저곳이 쑤시기도 하고 떨리며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기온이 영하15도라고 했는데, 어쩌면 지금 떨리는 것은 추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죽으리라...'

죽으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죽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워 최후의 방법으로 죽음이라는 도피처를 택했지만 막상 그 도망의 첫걸음을 실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많은 번뇌에 시달렸고 지금까지의 어떤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그냥 한 걸음 내딛기만 하면 된다... 뭘 고민해... 이미 마음의 준비는 다 끝냈잖아... 편해지자'


까마득해 보이는 18층 아파트의 난간!

초저녁 즈음이라 겨울이어도 아직 밝아 아래까지의 공간이 정확히 느껴진다.

그런데 저 나무는 무슨 나무이길래 한 겨울에도 이파리가 저렇게 많을까?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그야말로 한 발짝만 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더 이상 돈 때문에 패륜적 언사까지 자행하며 온갖 수치와 모욕을 퍼붓던 그 지겨운 인간들의 하얀 침이 고여있는 주둥이를 안 봐도 된다.

곱던 얼굴에 기미가 덮여 언제 웃었는지도 모르게 상해버린 아내의 눈을 안 봐도 된다.

꼬질꼬질한 교복을 입고 친구들의 괴롭힘에 눈치를 보는 큰 딸과 친구들에게 떡볶이 한 번을 못 사서 학교에서 창피하다며 기죽어있는 막내아들의 뒷모습을 안 봐도 된다.

모든 것이 못난 부모 탓이라며 항상 울먹이는 어머니의 답답하게 측은한 손을 안 봐도 된다.

어떻게 하냐며 동정하지만 속으로 상황을 즐기는 듯한 주변 사람들의 가식적인 얼굴을 안 봐도 된다.


무엇보다 지겨운 삶을 살아가는, 지치고 헐벗겨진 나 자신을 더는 안 봐도 된다.


여전히 서늘한 기운은 몸 안에 가득 차 있지만 이제 한숨 정도는 쉴 수 있게 되었다.

휴~ 한 번 크게 한숨을 쉬어보지만, 엄청난 속도로 뛰는 심장과 가쁜 숨이 다독여지지 않는다.

온몸의 떨림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더 심해진다. 찬 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일까?

우유부단으로 점철된 인생... 나는 마지막까지 그대로다.


덜컹!

"어? 아저씨!!!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예?! 큰일 나요! 당장 내려와요!!!!! 어어~ 이봐욧!"

"네... 미안해요..."


'내 생애 마지막 보는 사람이 생면부지의 경비 아저씨라니... 큭큭~ 내 인생답네...'


오늘 새벽에 집에서 나올 때처럼 차분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차던 바람이 점점 따뜻해진다.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추락할 때는 인생의 여러 장면이 영화처럼 순식간에 생각이 난다는데... 왜 아무 생각도 안 날까?'


!

그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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