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리기를 쉬면서
책을 써보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성대한 사명감이나 부담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기에 모아놓았던 메모와 토막글들의 내용을 수정 · 편집하고, 나만의 논리를 적절히 배치하는 그동안의 과정은 내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참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사실 내 잡소리를 모아놓았을 때 17개나 되는 챕터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말이 쉬워 재정립이지 조각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챕터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매조지해놓고 보니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몇 개월 동안 행복감 속에서 단편적 정서와 사고를 되도록 있어 보이게 만지작거리고, 그를 최대한 차분한 척하면서 풀어냄으로써 내 머릿속을 비우고 누군가 받아들이든 말든 고민 따위 없이 자유롭게 투덜거리려 했던 나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뭐 물론 아직 내 머릿속이 잡생각과 잡소리 할 것 하나 없는 상태로 텅 비워진 것은 아니지만 옛 성현 중에 어느 분이 말씀하셨던 '넘치는 것보다는 약간 모자란 것이 낫다'는 말을 떠올리며 그를 따르기로 하였다.
분명히 또 이번과 같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내가 17개 챕터에 걸쳐 쓴 글들의 구성 방식은 'Jorge Luis Borges'가 쓴 'Ficciones'에서 거론된 '동물분류법'을 차용한 것이다. 'Borges'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동물은 아래 내용과 같이 분류된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황제에 속하는 동물 ⓑ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 사육동물 ⓓ 젖을 빠는 돼지 ⓔ 인어 ⓕ 전설상의 동물 ⓖ 주인 없는 개 ⓗ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 광폭한 동물 ⓙ 셀 수 없는 동물 ⓚ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 기타 ⓜ 물 주전자를 깨트리는 동물 ⓝ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어떤가? 괜히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이 흐물텅거리는 느낌과 함께 낯설고 생소함이 다가오지 않는가? - 원체 일반적 정서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분명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하나씩 짚어보면 저 분류법에 속하지 않는 동물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즉, 낯설지만 분명히 타당성을 가진 기준이라는 말이다.
나 역시도 이처럼 엉성 엉성 빠진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 할 말은 전부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뭐 어떤가 나만 그렇다고 믿으면 그만이지.
갑자기 번득 든 생각인데, 정신없이 나불거리는 내 모습이 마치 정치권에서 자주 들먹여지는 수염 길고 머리가 흰 한 사람과 비슷하게 비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 사람과의 차이를 말한다면 나는 유명하지 않고 선지자처럼 굴지 않는다 정도? 에이~ 의미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면서, 그리고 쓰면서도 반복해 들었던 생각이지만 '인간 만사는 정말 답이 없다.'
어디 한 구석은 말도 못 하게 재밌는데, 바로 옆은 정말 더럽게 재미없다.
순수한데 천박하고, 잔인한데 사랑이 넘친다. 절개를 지킨 자는 죽고, 변절자는 존경받는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차고 넘치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웃는 것이 예뻐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서, 웃으면 가벼워 보이고 진중하지 못하다고 비난받는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이라는 것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나는 철학자들의 뻔드르한 선물포장지 같은 언사에 항상 불만이 가득하다.
자기들이 뭔데 답이 없는 인간 세상에 대해 답을 내려고 하다가 공부해야 할 거리만 더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마르크스 등등 이 사람들이 인간사 답이 없음에 대해 공감하고 자신들의 이론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쉽게 공부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매사 어떠한 형이상학적 답을 내릴 수 없는 인간과 인간사에 대해 미리 예측하거나 뭔가 단정적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를 극도로 지양한다. 무계획하더라도 일단 행동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행동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빠르고 전략적이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바로 옆에 켜놓은 TV에서 파렴치한 범죄자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건에 대해 논평하던 패널 하나가 말 같지도 않은 이상한 소리를 시전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응? 죄가 뭔 잘못이 있는데? 죄를 짓는 사람이 문제지! 뭔 말을 반대로 하는 거야!
저렇게 분노를 야기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 심신 미약? 평소 상태가 아닌 흥분 상태? 웃기시네!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인간'이라면 5세 이전에 이미 다 깨우친 기초 도덕이고 윤리이다.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어린이집을 다니는 자녀나 조카, 동네 꼬마들에게 물어봐라!
누굴 때리거나 남의 물건 훔치거나 남을 해치는 것을 해도 된다고 말하는 아이들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냥 아무 잘못도 없는 '죄'에게 억울한 누명 씌우지 말고 범죄를 저지른 그 인간이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지고 상응하는 벌을 받아라! - 개인적으로는 함무라비 법 방식의 맞처벌을 좋아한다!
다른 챕터에 담지 못했던 '나'에 대해 썼던 조각 글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나도, 모두 나! 너무나 아끼고 사랑한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 지를 말 안 해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넓은 우주에 나란 존재는 나 하나뿐일 테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
친절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한테만 베풀면 된다. 불필요한 친절은 불화를 만든다. 받는 쪽은 자신이 우월해서 그런 줄 착각하고 주는 쪽은 괜한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참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다. 상당히 높은 부와 지위까지 올라갔다가 맨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쳐봤다. 누구는 안 그렇겠냐 반문하겠지만 막상 나하고 세세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하면 당신의 이야기가 나보다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여곡절이 많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배운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말을 꺼낸 것이다. 내가 최고일 때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내가 최악일 때 모두 떠나버렸다. 운이 좋아 다시 내가 최고가 된다면 그땐 최악일 때 내 옆에 있어줬던 사람들하고만 행복을 누릴 생각이다."
이제 이 쯤해두고 할 말 없으면 마무리 짓지 그래?
이런 말을 하는 당신이 보이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이제 정말 글 쓰는 것을 다시 쓰기 전까지 놓으려고 한다.
분명히 일시 멈춤이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시작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 챕터의 글이 마지막 글이기 때문에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편안하면서도 살짝 미소 지으며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했는데 생각보다 멋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 진짜 우리 헤어지자! 잘들 지내길 바란다.
몇 개월 동안 써온 글이 끝난다고 하는데 특이한 아쉬움도 없고, 특이한 충만함도 없다. 희한하다.
발달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