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to Taipei] 나를 살게 한 책
어릴 적엔 책을 좋아하는 척했다. 솔직하게는 책이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사촌언니들과 오빠랑 하던 불꽃놀이나 달고나 만들기가 더 재밌었다. 어릴 때 책을 읽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칭찬받고 싶어서. 누군가 '와, 그렇게 어려운 책을 읽니!' 하며 놀라는 게 좋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꼬마시절 화제의 책이었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다 읽고 뿌듯해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당연히 그 책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심지어 현재의 나는 그 책 이름을 '그 많던 치즈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검색해 보고서야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알았다.) 눈으로만 꾸역꾸역 읽었던 책이니 당연히 기억날 리 없다. 그렇게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는 '척' 하며 보냈다.
초중 시절에는 정신없이 놀았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다시 책을 좀 읽었다. 시험기간에는 뉴스만 봐도 재밌는 게 국룰이듯, K-여고생에게 야자 시간에 공부만 아니라면 뭐든 즐길거리가 되었다. 나에게 즐길거리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뉴스만 줄곧 보면 또 금방 싫증이 나듯 책은 나에게 야자 시간을 잠시 때우는 용이었다. 여가시간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찾아보거나 친구들과 나가 놀았다. 책에 딱히 흥미는 없었다. 다만 공부보다는 나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간간히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하곤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이 주로 그랬다.
대학교를 갔다. 숨 막히는 전공 공부에서 도망쳐 다시 책으로 빠져들었다. 이 때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읽었다. 아는 체하고 싶어 읽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만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힘들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게 되었는데, 웃기게도 '사랑'의 기술을 읽고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당시 나는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더 외로웠다. 책을 곱씹으며 내가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끊임없이 그에게서 사랑을 갈구했다. 밑 빠진 독처럼. 애정결핍 환자처럼. 그런 나를 보는 게 나는 너무 힘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사랑할 대상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나 자신과 사랑에 빠지기로 한 것이다. 그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혼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좋아해도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한다. 얼마 안 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책의 실용성을 경험한 첫 사례였다. 멀게만 존재하던 활자들이 내 인생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를 했다. 지원서를 넣어도 번번이 떨어졌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바닥을 쳤다. 앞길이 막막했다. 다들 뭐 해 먹고사는 거야? 그 질문이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던 시절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을 겪은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신과에 가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당시에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상처를 없던 일처럼 꽁꽁 덮어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기 바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두 권의 책을 만났다.
1. 여행자의 독서 (이희인)
2. 아직도 가야 할 길 (모건 스콧 펙)
누군가 나의 인생을 바꾼 책을 꼽으라 하면, 나는 모건 스콧 펫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꼽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독서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희인 작가의 여행자의 독서를 꼽을 것이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따로 있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등등. (좋아하는 책은 계속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내가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준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이다. (이 사람들은 천재가 틀림없다.)
내가 힘들 때 찾는 책들은 주로 고전이다. 스스로 시카고 플랜을 1년 동안 진행하며 고전을 많이 읽는 시간을 가졌었다. 읽는 게 고역이고 무슨 말인지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다 읽고 나면 괜히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이상한 매력을 가진 책들이다.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정제되지 않은 통곡물 같은 아주 건강한 식단 같은 책들. 소화시키기는 매우 어렵지만, 읽고 나면 뒷맛이 개운한.
아무튼, 이런 쟁쟁한 책들을 두고 저 위의 두 권을 나의 인생책으로 뽑는 이유는 내가 가장 많이 울며 읽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삶은 고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짧지만 강렬한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나를 그리도 많이 울렸다. 면대면으로 해주는 장황한 조언이나 위로의 말보다 활자로 전해지는 한 문장 문장이 나의 상처를 헤집고 들춰냈다. 너무 아팠다. 처음 책을 읽은 날, 나는 채 몇 장도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집에서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아직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좀 더 가볍게 시작할 만한 책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집어온 이희인 작가의 '여행자의 독서'가 눈에 띄었다. 이것부터.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그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순히 여행기인 줄 알았던 책은 인문학에 가까웠다. 중간중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의 한마디에 참 많이 울었다.
이 책은 소설의 바탕이 되는 나라에 가서 책을 읽으며 작가가 느낀 감상과 책을 소개해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러시아를 여행하며 읽는 식이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책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밤을 새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작가의 이야기에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푸른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 책 이후로 나는 여행지에 꼭 책 한 권은 챙겨가게 되었다.
'e-북도 있는데 무겁게 왜 종이책을 들고 다니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이 무거운 책을 들고 오면 고생이 아까워서라도 읽게 된다. 내 본전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여행 중간중간 비는 시간을 오히려 즐기게 된다. 틈틈이 귀중한 독서 시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버스에서, 기차에서, 공항에서.
여행자의 독서를 완독 한 뒤, 어찌어찌 첫 들어간 직장 사정이 어려워져 잠시 백수가 되었을 때였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책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발리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배낭에 달랑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맨 먼저 챙겨 넣었다. 이희인 작가의 '여행의 문장들'도 챙겨 넣었다. 발리 여행은 나의 첫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2주간의 발리 여행동안 초반에는 가져간 책에 손도 못 댔다. 책을 읽기에는 발리가 너무 아름다웠고 낯선 곳에서는 숨만 쉬어도 재미있기에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발리 우붓에서는 아침에 요가원을 찾아 땀 흘리며 요가를 했고 오후엔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밤에는 일찍 들어가 잤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돌 산 하이킹을 하기도 했다. 투어를 예약하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갈까 싶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발리의 산은 돌산이었다. 나는 등산을 생각하고 신청한 건데 현실은 암벽등반 수준이었다. 현지인 가이드는 쪼리를 신고 그 산을 오르는데 부상자가 없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숙소에 돌아와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책을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책을 꺼낼 시간이 난 건 누사두아로 여행지를 옮기면서부터다. 휴양지 그 자체인 아름다운 그곳은 갈 곳이 바다와 내 숙소밖에 없었다. 1인실 따위 없는 발리의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2인분의 조식을 혼자 매일 챙겨 먹은 뒤 리조트의 픽업 봉고를 타고 근처 바닷가로 가 파라솔 밑에서 책을 읽었다. '여행자의 독서'를 골라 갔다. 그렇게 눈부신 곳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너무 어두운 책이었다. 파라솔 밑에서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다. 몇 번을 해봐도 바다수영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나와 대충 몸을 닦고 책을 또 읽었다. 오후 4~5시쯤 리조트에서 오는 픽업 봉고를 타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욕조에 가득 뜨근한 물을 받아 몸을 지졌다. 그런데 물이 짜다. 처음엔 내 몸에 남은 바닷물 탓인가 싶었는데, 샤워기에 입을 대고 물을 틀어보니 물이 짰다. 이게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싶어서 프런트에 전화를 하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내가 여기 상수도 공사를 해줄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다 싶어 그냥 생수 몇 병을 더 갖다 달라했다. 뜨끈한 염수에서 몸을 지지고 마무리는 생수로 했다.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 불린다. 하지원, 조인성 주연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처럼 진짜로 발리는 뭔 일이 생겨도 백번은 생길 만한 곳이다(나는 예외였지만). 혼자 여행에 익숙한 내가 풍경을 보며 '누구랑 함께 올걸'하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발리는 가는 곳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혼자만 보기 아까운' 말의 의미를 피부로 느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갖춘 누사두아를 떠나 비교적 번화가인 꾸따로 장소를 옮겨 발리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다행히 책 한 권은 다 읽은 참이었다.
그렇게 신들의 섬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중에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발리에서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비행 편이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이 5시간 지연된 것이다. 나름 비행기를 많이 탔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당황스러운 지연시간이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본 연착은 끽해야 한 두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있나. 공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라테(더럽게 맛없다)를 한잔 시키고 책 읽을 준비를 했다. 새벽 공항엔 같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될 사람들뿐이었다.
책에 깊이 빠져들어감을 느꼈다. 어느 문장은 너무 아프게 내 상처를 헤집기도 했고, 또 어떤 문장은 따끔할 정도로 나를 혼내기도 했다. 누가 볼세라 눈가를 자주 닦아냈다.
책을 읽다가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벽 시간이었기 때문에 비행기에 타자마자 기절했다.
나머지는 집에 와 여독을 푼 뒤 마저 읽었다. 나머지 분량을 남겨온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며 맘껏 울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이 책에 어떤 구절이 기억나느냐 묻는다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 책은 내 힘든 시절을 함께 해준 친구였으며 정신과였고, 나의 상처를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자, 그 상처마저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해준 내 삶의 구원이었다.
나는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삶을 바꿔 놓는다'는 걸 이제 안다. 가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그때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한 번뿐인 삶에 'if'는 없다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쁘진 않은 일이다.
책에 구원받는 인생이 많아졌으면. 위로와 위안은 넘쳐나지만 구원은 너무나 드문 세상이기에.
다음 여행에 어떤 책을 챙겨 갈지 고민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