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May 03. 2023

[D+15] 뤼다오, 강한 놈들만 살아남는 섬

컨딩-타이동-뤼다오

   

 드디어 기대했던 뤼다오에 들어왔다.


 컨딩에서 뤼다오를 가는 방법은 꽤나 복잡한데, 일단 컨딩에서 버스를 타고 팡 리아오라고 하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 내려 그곳에서 타이동을 가는 기차를 탄다. 그다음 타이동 푸강항구에서 뤼다오(녹도)로 들어오는 배를 타면 된다. 버스-기차-배. 비행기만 빼고 탈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은 죄다 거쳐야 한다.


버스
기차 (내부는 우리나라 KTX와 비슷한 시설과 분위기였다)


 컨딩에서 새벽부터 준비한 이야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매우 많지만 일단 그것은 논외로 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해서 여길 올 필요가 있나?' 되시겠다. 배는 멀미로 악명 높아 바짝 긴장하고 탔다. 다행히 토는 하지 않았지만 몇 번 고비가 있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럴 때마다 선사 측에서 제공해 준 비닐봉지를 꼭 쥐었다. 조금만 더 가면 토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다행히 멀리 섬이 보였다.



 멀미를 이겨내고 도착한 섬. 보통은 숙소에서 마중을 나온다는데 내가 예약한 숙소의 피켓이나 내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여긴 그런 거 없나. 구글맵을 켜서 숙소로 걸었다. 걸어서 5분 거리라고 뜬다. 대만 아래쪽은 해가 정말 너무 뜨겁다. 이미 컨딩에서 스쿠터를 몰다가 왼 손등에 화상을 입었는지 며칠 동안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다. 이미 오른손은 꺼멓게 탔다. 해가 이렇게 뜨거울 줄 모르고 신나게 돌아다닌 결과다. 목 뒷덜미와 어깨 쪽도 이미 탔다. 다리도 양말을 신은 발 빼고는 탄 상태인데 다리 부위마다 그러데이션으로 탔다.


 그런 데다가 오늘 또 해를 쬐니 몸이 화끈거린다.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길 맨 끝에 예약한 숙소로 추정되는 건물이 보인다. 사진에서 본 것과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게 맞는 거 같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옆에도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덩치가 크고 까만 남자 두 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포스에 저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살벌하다. 역시 바닷가라 그런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중국어로 말을 한다. 파파고를 켜 '아고다에서 예약했는데요' 번역한 중국어를 보여주었다. 잠시만 기다리란다.


 그런데 둘 다 윗 통을 벗고 있다. 배에서 내려오는 내내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전부 그렇긴 하던데 너무 당연하게 벗고 있는 모습이 괜히 낯이 부끄러워 폰만 쳐다보았다. 사장이 연락처를 적으라기에 한국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그러더니 액티비티 가격표를 들고 온다. 뭐 할지 고르란다. 스노클링 400위안. 이거 할게요. 시간은 내일 10시로.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체크인은 3시에 해야 한다 해서 알겠다 했다. 일단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기에 잠시 열도 식힐 겸 숙소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마주한 광경. 설마. 설마 저곳이 공용 화장실인가.


 대만의 공중 화장실은 매우 깨끗한 편이었다. 차라리 공중 화장실이 더 깨끗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특히나 샤워실이 화장실과 붙어있어서 더더욱. 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화장실 냄새가 심했다. 샤워실은 어떻게 생겼나 확인해 보는데. 오 마이갓. 여기서, 씻으라고?


 샤워실은 우리나라 해수욕장에 설치된 간이 샤워시설 같았다. 근데 거기다가 더 낡아 보이는. 샤워 부스가 5개가 있었는데 그나마 1개 샤워 헤드만 쓸만해 보였다. 여기서 씻어야겠다. 그래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첫 이미지부터 꽝이 되어버리니 그냥 다시 육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상하게 이곳은 정이 가지 않는다. 사장님도 무섭고 그냥 이 섬 자체가 무섭다. 컨딩이 딱 좋았다. 내 픽은 컨딩이다. 대체 누가 뤼다오가 그렇게 좋다고 한 거야?


 멘붕에 빠져 있는 내게 사장님이 체크인을 하자며 부른다. 짐을 챙겨 뒤를 따라가니 4인 여성 도미토리 방 하나를 안내해 준다. 여기서 2차 멘붕. 간단한 방 키 설명을 마치고 사장님이 나가자마자 침대를 뒤집어 봤다. 아무리 봐도 이건 청소를 한 침대가 아니다. 정말 심각하게 숙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을 했다. 방을 바꿔달라거나 컴플레인을 하기에는 다른 방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고, 무엇보다 사장님의 포스가 너무 강렬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빈 침대 중에 그나마 나아 보이는 곳을 고르는 것이었다. 2층에 있는 침대가 그래도 그나마 (도찐개찐이지만) 나아 보였다. 혹시나 베드버그나 벌레가 있을지 몰라 커버를 벗기고 플래시를 켜 매트리스를 살펴보았다.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이긴 한데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몰라 침대 전체를 구석구석 살폈다. 일단 찜찜하긴 하지만 베드버그가 (현재는) 없는 것 같다. 우선 급한 대로 침대 검증을 마치고 주변을 살피러 숙소를 나섰다.


 길을 가는 내내 숙소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숙소 가격이 그렇게 싼 것도 아니다. 다른 숙소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가격인데 이런 시설이라니. 후기도 나쁘지 않아 선택한 곳이었다. 죄다 사기꾼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구글 후기를 보니 최근 후기, 평점 1점. 으아악. 아고다는 그런 말 없었다고! 오늘 또 하나 배웠다. 숙소를 구할 때는 무조건 구글 후기도 참고할 것. 무엇보다 섬에 있는 숙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


 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환불도 안 되는 숙소였기에 일단 시끄러운 속을 달래려 걸었다. 스쿠터를 빌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3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고, 날이 살짝 흐려지려 하길래 그냥 걸었다.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죄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걷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그래. 알아요. 이상한 거. 뤼다오에서 걸어 다니면 미쳤다는 반응을, 나 같아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냥 걷고 싶었다. 이미 컨딩에서 많이 달렸고, 그리고 길이 운전하기에 괜찮은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쩝. 이쁘긴 이쁘다. 딱 그런 느낌이다. 진짜 이쁘고 잘생겼는데 정이 안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느낌. 실제로 봤을 때는 컨딩이 훨씬 좋았는데 사진은 뤼다오가 더 잘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뤼다오에도 유명한 등대가 있길래 걸어가 보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땀이 줄줄 흐르지만 그래도 예쁘긴 예쁘다. 컨딩이 큼직 큼직 예쁘다면 뤼다오는 아기자기 이쁜 맛이 있다. 그렇게 등대 구경을 마치고 그 주변을 조금 구경하다가 다시 숙소로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기는 문신을 해야 들어올 수 있는 섬인가 보다. 죄다 문신 하나씩은 몸에 새겼다. 여자들은 타투, 남자들은 팔이나 어깨에 큼지막한 용 한 마리씩 휘감고 있다. 나이 상관없다. 할아버지들도 그렇다. 아악.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강한 놈(분)들만 살아남는 곳인가 보다. 여자들은 다들 구릿빛으로 태닝을 하고 센 언니 스타일들의 멋쟁이들이 많았다. 덕분에 길을 걷는 내내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게 숙소에 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저녁으로 먹을 비빔면과 내일 아침에 먹을 바나나, 요구르트 그리고 물 한 병을 샀다. 걷는 중간에 지쳐서 잠시 의자에 앉았다.




  풍경이 기가 막히다. 해가 지는 무렵이라 더더욱. 그렇게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돌리는데 한 여자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충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인 것 같았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오케이 오케이, 하니 연신 감사하단다. 오늘 여기서 만난 대만 사람들 중에 제일 좋은 사람들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니 꽤나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혼자 왔냐, 놀러 왔냐 등등. 대답을 하고 나도 묻고 싶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안타깝게도 놀러 왔는데 내일 돌아간단다. 아쉽다. 작별 인사를 건네고 다시 숙소로 걸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비빔면을 먹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옥상에서 보는 일몰이 멋지다. 왜 아무도 여긴 안 올라오지?


맛은 쏘쏘. 저 면이 밀가루 스파게티 면 같다. 오늘 입맛이 별로 없어서 반은 남겼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라 바로 샤워를 하기로 했다. 했는데,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일단 씻긴 씻어야 한다. 해보자. 그래. 짐을 싸들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엔 나뿐이었다.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좋긴 했지만 조금 무섭기도 했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단 개운하니 살 것 같다. 그런데 침대에 그냥 올라가기가 좀 그렇다. 다시 2차 검증에 들어갔다. 앞 전에 검사했던 것보다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없는 것 같긴 한데. 전에는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너무 피곤해서 일단 덮으라고 준 이불을 안 덮고 한 겹 더 깔고 자기로 했다. 위아래는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2차 검증을 마치고 조심스레 침대 위에 앉았다. 근데 이 방에 룸메이트가 있는 것 같은데 (짐을 봐서) 언제 들어오는지 아무리 기다려봐도 올 생각이 없다. 일단 글을 쓰자. 침대 위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후다닥 내다보니 막 들어오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앳돼 보이는 멋쟁이 친구다 (멋쟁이라 하니 꼭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저 쪽에서 먼저 말을 한다. 니하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제일 궁금한 거. 언제 여기 도착했는지? 물으니 어제 왔단다. 하룻밤 자봤다는 소리다. 혹시 여기 베드버그 나와? 물어보니 인상을 구기며 진짜? 란다. 아니, 나오는지 물어보는 거야. 하니 본인은 괜찮았단다. 한시름 놨다.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큰 기쁨이라니. 혼자 괜히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숙소에 대한 얘기도 했다가. 어디서 왔냐고도 물었다가. 친구는 타이베이에서 왔는데 여기에 친구가 있어서 일도 도와주고 여행도 할 겸 왔단다. 그래서 늦게 들어왔구나. 숙소는 온라인에서 싸길래 예약했는데 본인도 화장실은 싫다고 한다. 일단 5일 있기로 했는데 아마 다른 곳을 구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주인은 좋은 사람이니 괜찮다 해서 또 안심.



 일단은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너무 긴 하루였다. 부디 내일은 이 섬을 좀 더 좋아하게 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D+14] 컨딩일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