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이 Sep 26. 2021

칸나 - 유화

제주도 해녀, 김재이 작가

칸나 Oil on Canvas 162×112cm



새싹이 여려

가뭄을 버티어 내지 못할 줄 알았어요.


도도한 꽃대가 길어

바람에 꺾여버릴까 위태로워 보였어요.


열대화인 듯 화려하여

병충해마저 피할 수 없겠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칸나는 척박한 돌섬에 기어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어요.

가뭄에 새싹을 틔우고, 거센 바람에도 꽃대를 키우고,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요.


그녀는 칸나일까요?




작품에서 나다운 그림체가 완성이 되기 시작한 것은 '구도'라는 법칙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어요. 그리고 그런 틀을 깬 구도들은 미국에 머무르던 시절 오히려 '이국적'이다라는 관대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저에게 큰 용기가 되었어요.


'구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림이나 사진을 보았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정도의 배열, 무게감의 적절한 수평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작품에서만 보아도 교과서적인 구도로 따져 보자면 말도 안 되는 구도가 되겠지요. 캔버스의 모든 사물과 인물이 왼쪽으로 몰려 있으니까 말이지요. 저의 인물화 대부분이 이러한 구도이기도 하고요. 모두들 한쪽으로 치우치는 그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구도의 법칙을 모두 외면해 버린 것은 아니에요. 화면이 아닌 실제로 작품을 대하면 사물이 몰려있는 왼쪽의 반대쪽 공간에는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패스토 기법을 적용하여 전체적인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으며 오른쪽 상단의 검은색 부분 또한 시선과 무게감이 보태어지는 효과를 냄으로서 보는 이에게 적절한 안정감을 주도록 구성하였답니다.


인물화로서는 첫 대작 100호입니다. 휘날리는 검은 머리는 일렁이는 파도를 표현했습니다♡




인물화를 대작으로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깊은 고뇌의 시간들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값진 시간들이기도 했답니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인물화는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켜켜히 쌓인 여러층의 물감이 존재해야만 사람의 표정을 비로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골격, 근육, 살, 홍조, 얼룩하게 그을린 피부까지. 아주 얇은 근막처럼 유화 물감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리며 그리고 말리고 그리고 말리고를 반복해야 한답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마지막 눈동자는 화룡점정이겠지요.


이번 인물화 칸나는 얼굴에만 30번에 가까운 유화 물감을 덧바르고 덧바름으로써 미세하게 변화하는 표정들을 한 캔버스 안에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유화는, 특히 인물화는 한 장의 사진으로는 그 묵직한 매력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답니다. 2021.12.20 서울 살롱드 아트 갤러리 개인전에서 수줍게 선보이겠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jaeyikim


매거진의 이전글 첫소랑 - 유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