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자체가 안 된다. 정치권 공방으로 다루는 것 조차 쉽지 않다."
7월13일 아침에 발행될 미디어오늘 1058호입니다. 늘 그렇지만 이번 신문은 더 무거운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1. 이정현 녹취록이 공개된 지 12일째, 당사자인 KBS는 물론이고 MBC와 SBS에서 관련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KBS는 11일만에 겨우 여야 의원들 공방 형태로 슬쩍 걸쳤군요. 김도연 기자와 강성원 차현아 기자가 방송사 기자들 이야기를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KBS의 한 기자는 “지금 발제 자체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며 “편집회의 자체에 올라오지 않으니 축조회의에 (관련 아이템이) 들어갈 리 없다”고 말합니다. “보도국 내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정권에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한직으로 쫓겨나는 상황”이라는 말도 있고요. MBC의 한 기자는 “지금의 MBC는 보도국 수뇌부의 판단과 다른 발제를 하고도 보도국에 남아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정치권의 공방으로 다루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2. 1면에는 모처럼 해직 언론인들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사진 느낌이 좋아서 싣긴 했는데 존재감 없는 정의당이 과연 이정현 녹취록 국면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냈는지는 의문입니다. 외통위로 간 추혜선 의원도 있군요.
3. 해직 언론인들이 모인 건 청와대의 보도 통제가 KBS만의 일이 아니고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돼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놀라운 사실을 폭로했는데요. 구본홍 당시 사장이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이 나가고 기타 치는 모습이 나갔다고 (청와대에서) 난리”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거죠. 노 기자는 구본홍 사장도 청와대에 잘못 보여서 아웃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본홍 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것 때문에 그만 둔 건 아니지만 청와대에서 민감하게 굴었던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습니다. 정철운 기자의 기사입니다.
4. 12일 동안 이정현 녹취록 관련 보도를 보니 경향신문이 36건으로 가장 많았고요. 한겨레가 31건, 한국일보가 16건, 조중동은 6건씩. KBS와 MBC는 각 1건에 그쳤습니다. 그 빈 자리를 국회의 막말 파문으로 채웠군요. 막말의 내용은 사실 중요하지 않죠. 정치 혐오로 더 더러운 걸 덮는 해묵은 수법입니다.
이번호도 기자들을 갈아넣어 기획 기사로 가득 채웠습니다.
5. 강성원 기자는 방문진(MBC 대주주죠) 이사회의 난투극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고영주 : 한번 붙어볼래?
유기철 : 그래.
고영주 : 이리와.
유기철 : 한판 붙어봐. 붙어봐.
정말 난리도 아니군요. “지난 방문진도 엉망이었지만 이번 방문진은 ‘멘붕’이란 표현도 부족할 정도”라는 게 한 이사의 말입니다. 이사회를 공개하지 않는 건 그래도 부끄러운 걸 알기 때문일까요. 9명 이사 중에 방송 전문가는 거의 없군요. 여성은 한 명도 없고요. 고성과 막말에 인신공격은 기본이고 욕설도 다반사고 멱살을 잡기 직전까지 난투극을 벌이는데, 이런 사람들이 MBC를 관리 감독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죠. 백종문 녹취록은 안건으로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6.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가 폐지됐죠. 그나마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인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남아있는데요. 살펴보니 민감한 이슈는 모두 거세되고 시시콜콜 예능 프로그램 소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자사 뉴스를 거론하는 건 금기일까요? 한 건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SBS가 간혹 보도 비평을 하고 있고요. 종편 중에서는 JTBC가 좀 신랄한 비판을 하는 편입니다. 나머지 종편은 자화자찬이 낯뜨거울 지경입니다. 금준경 차현아 기자의 기사입니다.
7. 조윤호 기자의 정치기사 바로보기는 소수정당의 설움에 주목했습니다. 기본소득을 줄창 이야기한 건 녹색당인데 대부분 언론이 생깠죠.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이야기하니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합니다. 요즘은 정의당도 찬밥 신세인데 원외 정당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책을 발표해도 논란이나 공방의 한쪽으로 축소되기 일쑤죠.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는데 선거 때면 야권연대를 하라고 압박합니다. 현실적으로 주류 정당에 기사 비중이 클 수밖에 없지만 민주주의와 다양성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8. 손가영 기자는 구의역 사고를 계속 취재해 왔습니다. 한달 넘게 취재한 결과 결론은 비정규직 등에 빨대를 꽂는 메피아가 문제가 아니라 2008년의 메트로 외주화가 잘못 꿴 첫단추라는 겁니다. 공기업 철밥통을 깬다는 명분 아래 무분별하게 외주화를 밀어붙였고 핵심은 인력 퇴출과 비용 절감이었습니다. 과연 경영이 합리화 됐나요? 일하는 건 같은데 비정규직이 희생을 떠안았고 시민들은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명박 전 시장과 오세훈 전 시장, 그리고 김상돈 전 메트로 시장에게 책임을 묻고 문제의 원인을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9. 정민경 기자는 우장창창 기사 때문에 요즘 악플 세례를 받고 있죠. 갑질이냐 을질이냐 논란이 많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팩트만 접근해 보면 리쌍은 법대로 했지만 임차인은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개정 상가법에 따르면 리쌍이 집니다. 둘 다 억울하겠지만 결국 조금씩 물러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 떠나서 리쌍이 4000만원을 들여 용역을 90명이나 부른 건 좀처럼 이해할 수 없군요. 그 돈을 쫓겨나는 사람에게 물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도저히 이걸 을질이라고 부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10. 그밖의 기사들. 장슬기 기자는 카티야 키핑 독일 좌파당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본소득은 임금과 소득의 고리 끊고 “임금과 소득의 고리 끊고, 화폐가 아닌 시간에 투자하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그것 자체로 완결된 제도라기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적극적인 투쟁”이라는 거죠. 방통위가 온갖 변칙 광고를 모두 합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채널 돌릴 때 튀어나오는 재핑 광고, 상품 구입을 유도하는 트리거 광고, 심지어 VOD에도 광고를 추가 허용하겠다는군요. 돈독이 오른 듯 합니다(주어는 없습니다). / 코바코와 언론재단이 프레스센터 운영권을 두고 박 터지게 싸우고 있군요. 원래 코바코 소유긴 한데 언론재단이 운영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바코법이 폐지되면서 코바코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언론재단은 내주지 않으려 하고 있고요. / 어제는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사학비리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언론이 다루지 않느냐고 물었죠. 뾰족한 답은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인 병폐에 우리 사회가 그만큼 무력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살찐 고양이법’으로 살찐 고양이의 살을 뺄 수 없다는 비평 기사도 추천합니다. 취지야 좋지만 이런 거야 말로 포퓰리즘 법이죠. 정책 아닌 의제나 운동에 가깝고, 소득 재분배의 실효성도 없습니다. 최저임금 견인 효과도 의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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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후원회원이 8명이나 줄어서 698명이 됐습니다. 마음이 아프군요. 다음주에는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