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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Nov 29. 2016

미디어오늘 1077호.

“순장조가 될 순 없다” 언론의 뒤늦은 반성.

1. 우리는 지금 현대사의 가장 희극적인 장면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탄핵안 상정을 이틀 앞두고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고 던졌죠. 박 대통령 머리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속셈은 명확합니다. 탄핵을 멈춰달라는 비박계에 보내는 신호죠. (지금 탄핵하면 문재인 되는 거 알지?) 다들 어차피 당장 대통령 뽑고 싶지는 않을 테니 시간을 벌자는 제안인 거죠. (지금 하야하면 1월28일에 선거해야 돼.) 당장 탄핵 정족수 맞추기가 애매하게 됐고 야권 대권 주자들은 주판알을 튕기고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면 탄핵 밖에 없죠. 여야가 합의해서 하야 시점을 정한다고 해도 다른 핑계를 대서 안 물러나면 그만이고 결국 그때 가서 다시 탄핵을 논의해야겠죠.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이란 건 사실 현실성이 없습니다. 내각제 개헌까지 포함해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이런 시국에 여야가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요. 결국 박 대통령은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할 거고, 그 과정에서 다들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할 겁니다. 내려놓겠다고는 했지만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는 건 그냥 니들끼리 싸워보라는 말과 같습니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거죠.

2. 순장조가 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박바라기’ 언론에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일부는 분노하고 일부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MBC에서는 주말뉴스 앵커들이 사의를 표명했고요. 기자들 성명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기자는 “MBC 시청률 30%일 때 다녔던 보도국장은 지금 3% 시청률이 부끄럽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노조는 공정보도위를 재개했습니다. “역시 언론이 살 길은 살아있는 권력 견제라는 걸 실감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고요. 동아일보 노조도 “과거 동아일보의 야성 회복이 절실하다”는 성명을 냈군요.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에 대한 비판이 많았죠. 29일에는 그나마 “질문을 한 번도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질문하는 기자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도망치다시피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죠.



3. 이번 토요일에도 촛불을 들어야 할까요. 정말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군요. 조선일보 지면을 유심히 보시면 특히 비폭력 집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입니다. 100만명 넘게 모인 집회에서 경찰과 큰 충돌 없이 부상자 한 명 발생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고 정말 자랑할 만한 성숙한 시위 문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백남기 열사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전지윤님의 기고를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폭력-비폭력 프레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인데요. 우리가 평화시위를 해서 저들이 물러난 게 아닙니다. 백남기 열사가 과격해서 물대포에 맞아 숨진 게 아니고요. 조선일보가 칭찬하고 훈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겁을 먹은 것이라는 분석인데요. 그래서 욕먹고 비난하기 보다는 아부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서 전복돼야 한다. 그러나 사상은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때 물질적 힘이 된다.” 칼 마르크스의 말입니다.

4. 종편 출범 5년이 됐습니다.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이 무너지고 JTBC가 약진하면서 종편 퇴출이란 구호도 퇴색됐습니다만 좀 냉정한 평가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종편은 이명박 정부의 ‘보험’이었습니다. 실제로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정권을 연장하는 과정의 일등공신이었고요. TV조선 엄성섭 앵커가 이런 말을 했죠. “밖에서 잘못 보면 박근혜 뉴스라고 판단하게 되는데, 우린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시장적 접근을 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형광등 100개라고 치켜세울 때는 그게 팔리기 때문이었고 지금 또 박근혜를 앞장서서 밟고 있는 건 그게 또 장사가 되기 때문인 겁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했으나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종편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선택한 것이죠. 그것 자체를 나쁘게 볼 것까진 없습니다. 그러나 종편이 자신들이 속한 보수 기득권 동맹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느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여전히 정부 차원의 강력한 특혜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모델이죠. 종편 4사의 매출 1조원을 돌파했지만 JTBC를 제외하고는 종합편성이라 부르는 게 민망할 정도입니다. 탄핵 국면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치 포르노를 쏟아낼지도 모르죠.



5. 많은 걸 바로 잡아야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에게 개성공단 폐쇄 상황을 들어봤습니다.

“하루 만에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군사 작전하듯 한 순간에 진행됐다. 자기도 어쩔 방법이 없다, 윗선 지시라고 했다. 장관은 우리 얼굴도 제대로 못 보면서 수정이 안 된다, 중단할 수밖에 없다, 다른 대안도 없고 협의할 게재도 없다는 말만 했다.” 윗선의 지시라는 게 결국 청와대, 그리고 최순실의 결정 아니었느냐는 의혹인데요. 이분들 수십억을 손해를 봤는데 대출 지원 말고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시 개성공단이 열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김유리 기자의 기사입니다.

6. 이하늬 기자는 동아일보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장강명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통일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소설을 최근 출간했죠. ‘통일은 대박’이란 어느 허언증 환자의 구호도 있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통일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해 봤는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십쇼.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이러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벌였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합니다.”

장강명씨의 ‘댓글부대’는 국정원 대선 개입을 생생하게 그려 예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신문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일 뿐 여전히 스스로를 기자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이죠.

7. 이 와중에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통과됐습니다. 매국 협정이라고 떠들썩했는데 어수선한 틈을 타서 국회 논의도 없이 어물쩍 서명을 해버렸습니다. 기자들이 국방부에 몰려갔는데 사진을 못 찍게 했죠. 그래서 사진 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장면을 대표로 한 기자가 찍었습니다. 차단당한 현장, 그것 자체로 기록의 가치가 있다고 봤기 때문일 텐데요.

차현아 기자가 이 군사정보협정을 탈탈 털어봤습니다. 한국은 대북 정보가 갈수록 접근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의존할 필요가 있는 거고요. 일본은 북한을 선제 타격할 가능성을 고려해 한국의 군사 작전을 들여다 보고 싶어합니다. 현대판 정명가도인 셈이죠. 자위대 한국 진출 가능성은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배후에 일본의 군사대국 야욕과 미국의 동북아 패권 강화가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8. 한국타이어 집단 사망 사건을 취재한 손가영 기자는 삼성전자 집단 백혈병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고 말합니다. 언론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후속 대책도 없고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 떠들썩하게 역학조사를 했지만 정작 현장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유독 가스도 없었죠. 조사가 제대로 될 리 없지만 그걸로 면죄부가 됐고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둘째, 산재 신청도 대부분 기각됐습니다. 공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 개별적으로 업무 연관성을 직접 입증해야 했던 거죠. 이번 취재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다들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위험하다’는 걸 피해자가 입증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다’는 걸 기업이 입증하게 해야 한다”고요.

9. 박근혜 탄핵이 끝나면 이명박도 심판대에 올려야 합니다. 4대강은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처벌은커녕 진상 조사 조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언론 역시 공범입니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 대운하일 때 반대 또는 중립적이었던 많은 언론이 4대강으로 이름을 바꾸자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배경에 단군 이래 사상 최대 호황이었던 건설업 경기와 쏟아지는 건설사 광고·협찬이 있었을 거라는 게 이 전 교수의 분석입니다. 반드시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10. 그밖의 기사들.

조중동 유료부수가 275만부로 집계됐습니다. 유료부수는 거의 그대로인데 발행부수는 전년 대비 20만부 이상 줄었군요. 돈 안 되는 홍보부수를 줄인 것으로 보입니다. 10만부를 줄여도 연간 84억원 정도 경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전국 종합일간지 11개사의 총 발행부수는 474만3169부, 총 유료부수는 378만6536부로 집계됐습니다.

요즘 TBS가 잘 나가죠. ‘나는꼼수다’ 김어준 총수를 영입하기도 했고요. 서울시 산하 기관이라 시장의 성향을 많이 따라가는 측면이 있지만 MBC 출신 정찬형 사장이 간 뒤로 시사를 강화했다는 평가입니다. TBS가 창조경제를 비판했더니 미래부에서 유사 보도프로그램이란 이유로 온갖 협박 아닌 협박을 한 모양입니다. 유사 보도프로그램 문제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TBS만의 문제도 아니고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제가 됐는데 공연한 트집잡기일 가능성이 크죠. 결국 미디어오늘이 취재에 들어가니 제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JTBC가 지상파 방송의 출구조사 결과를 무단 도용했다고 논란이 있었죠. 항소심에서도 각 2억원씩 6억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습니다. JTBC가 잘못한 게 맞죠. 다만 이 재판은 분풀이 성격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래저래 JTBC가 뉴스의 중심에 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 주치의 출신의 김상만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에게 JTBC를 고발하라고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치졸하군요.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직후 KBS 이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면종복배(앞에서 따르는 척 하면서 뒤에서 배신한다)‘라는 메모가 작성됐던 그 시점입니다. 박근혜 탄핵과 함께 여론 통제의 전모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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