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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Jun 17. 2016

나라면 임우재 인터뷰를 내보냈을까.  

기자라면 일단 썼겠지만 데스크라면 아쉽지만 킬했을 것 같다.

미디어오늘도 어제 아침 편집회의 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것이지만.
조선일보가 비보도 약속을 깨고 보도한 것은 단순히 약속을 저버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사 가치의 문제고 취재 윤리의 문제다.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는 여기.

물먹은 한겨레가 뒤늦게 쓴 기사는 여기.


임우재의 파탄난 결혼 생활이 공적 사안인가? 아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보도(폭로)할 정도의 가치가 있나? 아니다.
게다가 역시 일방의 주장일 뿐이다.

세 가지 비슷한 상황을 비교해 보자.
1. 임우재 “술 마시고 아내 때려 이혼 당했다는 건 사실 아니다”
2. 이완구 “언론인들 내가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3. 민경욱 “서남수 장관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닌데”

일단 이완구 김치찌개집 발언과는 다르다.
이완구의 막말을 들은 기자들이 녹음을 해놓고도 기사를 안 쓰다가 녹취록이 공개돼 뒤늦게 논란이 됐다.
그때도 비보도 전제의 식사자리였지만 이미 사적 대화라기 보다는 총리 후보자와 기자들의 만남이었고 이날 발언은 총리 후보자의 인격 수준을 의심하게 할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이완구 녹취록 현장의 기자들은 왜 침묵했나, 당시 기사는 여기.


그렇다면 질문은
임우재와의 비보도 약속은 깨면 안 되지만, 이완구의 비보도 약속은 깨도 되나?

일단 기자들은 취재원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생각했을 것이다.
임우재는 다시 안 봐도 될 사람이고(또 힘 없고 이미 끈 떨어진 일반인이지만) 이완구는 총리가 될 사람이었다.
아마도 조선일보 기자는 임우재와의 인간 관계는 단절해도 관계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완구와 밥을 먹었던 기자들은 이런 사소한 건으로 총리와 척을 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 가치의 문제로 돌아가 내가 데스크라면
임우재 건은 짜치다고 킬 했을 것 같고.
이완구 건은 앞으로 안 볼 생각하고 쓰자고 했을 것 같다. 물론 취재 기자가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제는 원만한 관계였나?

임우재 건은 세상을 바꿀 특종도 아닌 데다 새로운 내용도 아니고, 단독이라고 내놓고도 욕 먹기 좋을 사안이다. (게다가 술 먹고 때렸느냐 안 때렸느냐는 한쪽 주장만 듣고 쓸 사안이 아니다.)
이완구 건은 총리 후보자의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결국 총리 인준을 받았고 두 달 만에 물러났지만 이완구는 이미 김치찌개집 발언 이후로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오마이뉴스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라면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출입정지를 당한 적 있다.
이건 이완구와는 또 다르다.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식 브리핑 자리였고 청와대 대변인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짜치긴 하지만 짜치다는 게 야마였다.)


민경욱 라면 계란 발언이 비보도 사안인가? 당시 기사.


물론 오프더레코드를 깨기 시작하면 안 깨는 기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 또는 피해를 입기 때문에 기자단 차원에서 제재를 할 수는 있지만 제재를 감수하고 깰 수는 있다. 내가 데스크라면 깨고 청와대 출입정지를 당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 같고.

애초에 오프더레코드를 깨면 출입정지를 시킨다는 기자단의 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고. (보통은 오프더레코드를 깨자고 제안하고 같이 깨는 게 상도의로 여겨지긴 하지만.) (기자실 출입이 금지되면 백 브리핑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한 것도 사실.)
오프더레코드가 없으면 속 마음을 이야기 안 하지 않겠냐고? 속 마음을 듣겠다고 다 같이 안 쓰는 게 더 웃기지 않나. 기자단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인간적으로 서로 친해져서 뭐할 건가.


영화 '소수의견' 가운데.


영화 소수의견에서 김옥빈이 했던 말처럼 “미안하면 기자 못해요” 상황이다.

결론은 임우재가 비보도 요청을 했더라도.
충분히 기사 가치가 있다면(가정사가 아니라 삼성 그룹의 내밀한 비밀이라든가 이건희의 신상 관련 중요한 팩트라든가) 당연히 썼을 것이고 내가 데스크라면 쓰라고 했을 것이다.


이건 시사저널이 정리한 익명의 언론사 데스크들 반응.

그리고 이건 후속 상황.


기사 가치를 보는 눈은 다를 테니 월간조선은 임우재의 이혼 사유가 (취재윤리를 포기할 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겠지만. (절대 쓰면 안 되는 그런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속물적인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재벌가의 일그러진 가족 관계 자체가 사회적 관심 사안이고. 임우재가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오히려 삼성과의 관계 때문에 상당수 언론은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안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필요하다면 소송도 감수해야겠지만) 애초에 팩트도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공적가치가 크다면 취재윤리를 넘어설 때도 있겠지만 이번 사안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식사 자리에서 임우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내가 기자라면 일단 썼을 것 같고. 데스크라면 킬했을 것 같다. 그게 솔직한 생각이다. 


그리고 이건 임우재 같은 사람이 읽어야 할 글. 기자를 믿지 마세요.


그리고 강성원 기자의 의견 추가.

"이완구 건은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한 상황이 아니아서 비교하긴 힘들것 같아요.
이완구는 당연히 보도해야 하는걸 안 한 거라
한국일보 기자가 의원실에 넘긴게 취재윤리 쟁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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