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월드'로 들어가는 당신에게

<웰컴 투 X-월드>, 감독 한태의

by 서리
28829_1646715264.jpg © 한태의, (주)시네마달

2022년도 벌써 3월이 되었습니다. 뺨을 훑고 지나가는 찬 바람에 바르르 몸을 떨다가도 햇살 아래 있으면 곧 정수리가 뜨뜻해 오는 것을 보면 정말 봄이 온 듯합니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어째서인지 계절을 꼽을 때는 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지요. 새 여름, 새 가을, 새 겨울은 없어도 새봄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봄 냄새가 솔솔 날 때쯤에야 비로소 새로운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국어사전에 ‘새봄’을 검색해봅니다. 1.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봄. 2. 새로운 힘이 생기거나 희망이 가득 찬 시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봄을 맞아 새로운 힘이 생기는 따뜻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2020년 개봉한 한태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웰컴 투 X-월드>입니다.



28829_1646715269.jpg © 한태의, (주)시네마달

출연자 최미경 씨는 한태의 감독의 어머니로,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십 이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할아버지가 '우리 따로 살자'를 선언하면서, 엄마 최씨는 '시월드'를 떠나 새로운 'X-월드'로 나아가게 됩니다.


줄거리만 보고서 얼핏 생각해봤을 때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런 곳에 무게를 둘 것 같습니다. 유교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강요되어 온 여성의 희생, 이를 거부하고 타파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갈등, 마침내 찾은 자유와 해방… 그러나 한태의 감독은 그런 사회적인 메시지 대신 엄마 ‘최미경 씨’ 개인에게 집중합니다. 이 영화의 매력도 바로 그 ‘사적인’ 지점에 있습니다.



첫째로, 주인공인 미경 씨가 가지는 캐릭터로서의 힘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정도 많고,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그렇지만 꿋꿋하고 씩씩한, ‘말랑하면서도 질긴 사람’입니다. 그가 가진 사연, 즉 영화가 다루는 ‘사건’과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그 자체로 반짝거리는 매력적인 인물이지요. 그러나 이 중년 여성의 사랑스러움을 이렇게나 담뿍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딸이,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촬영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직 ‘최미경 씨 딸 한태의’ 감독만이 찍을 수 있는 작품인 셈입니다.


둘째로,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써가 아니라 개인의 삶 그 자체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하였기 때문에 얻은 담백한 균형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엄마는 왜 할아버지 집에서 나오는 것을 주저할까’하는 질문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해 들어가지도 않고, 비판의 대상을 제시거나 관객에게 변화를 촉구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시선을 통해 개인의 삶을 해석하는 다양한 맥락을 제공하며, 누구도 그의 선택을 ‘이것 때문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음을 알게 합니다.



28829_1646715276.jpg © 한태의, (주)시네마달

마지막으로 보편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훌륭한 부분 중 하나는 ‘나의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도 과장이나 축소, 자기연민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 감독은 실제로 본인이 사는 집임에도 변변치 않은 살림, 후줄근한 세간살이와 너저분한 집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 모녀는 둘이서 아파트 전세도 들어가지 못하는 꼴랑(?) 일억을 들고 분가를 하겠다고 부동산을 한없이 돌고 돌아도 내내 씩씩합니다. 자잘한 문제와 갈등 속에서 좌충우돌하지만 꿋꿋하게 학교 잘 다니고, 일 잘 하고, 영화도 찍으며 지내는 ‘미경 씨네 가족’의 모습은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엇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뭉근한 힘을 전달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발랄합니다. 엄마 미경 씨의 사랑스러운 씩씩함이 영화의 연출에 묻어나는 것을 보면 정말 모녀가 맞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제도에 부정적이던 딸은 영화를 찍으면서 엄마가 시댁 식구들에게 얽매여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만들어진 관계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별거 선언에 강제 독립(?)을 하면서 불안함을 비치던 엄마는 이제 새로운 가족을 들이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다가오는 새봄, 우리는 누구를 더 알아가고 무엇에 도전하게 될 까요. ‘X-월드’로 용기 내어 들어가는 당신에게 새봄에 걸맞은 새로운 힘이 가득 생겨나길 바라며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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