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와 고독으로부터 도망쳐온 당신에게

<나의 집은 어디인가>,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by 서리


28829_1652167734.jpg © Final Cut for Real, Sun Creature Studio


한 남자가 복잡한 무늬의 시트 위로 몸을 눕힌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기도 한다. 남자의 이름은 ‘아민’. 아프가니스탄 난민이자 동성애자이고, 코펜하겐의 학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곳에 누워 있다. “네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아민은 “없다”고 대답한다. 누군가에게 가볍게 털어놓기에는 너무 무거운 시간들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원피스를 입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전쟁을 피해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에 정착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연인과 안정적인 거처를 꿈꾸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민의 무거운 고백은 용기 있고 담담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 인물의 고백을 담아내는 방식은 다소 낯설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아민의 과거에 접속하기 위한 방식으로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바시르와 왈츠를>(아리 폴만, 2008) 이후 처음으로 정식 개봉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통해 아민의 과거를 재연하는 한편, 그의 상황과 감정을 선과 색의 변화로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아민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지난 삶을 보여줄 수 있고, 관객은 실사 화면이 주는 불필요한 자극 대신 아민의 마음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민의 이 개인적인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민도 아니고, 성소수자도 아닌 관객에게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28829_1652167742.jpg © Final Cut for Real, Sun Creature Studio

그것은 우리 누구나 각자의 불행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불행은 대부분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지 못하는 데서 온다. 아민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는다. 폭력에 노출되고, 불안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수치감을 느꼈을 때는 위협받는 소녀를 뒤로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나던 순간이었으며, 가장 고독했던 때는 밀입국에 성공한 뒤로 누구에게도 자신의 뿌리와 배경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외부의 위협과 폭력 앞에서 자기의 신념을 포기해야 할 때, 우리는 수치를 느낀다. 자신의 어떠함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없을지를 따지게 될 때, 우리는 고독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강제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추방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의로 도망치기도 한다. 아민은 외부의 힘에 의해 물리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떠나는(Flee) 신세가 되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떠나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봤고, 지금도 겪고 있을 것이다.



28829_1652167748.jpg © Final Cut for Real, Sun Creature Studio

그렇다면 관객이 정말 듣고자 하는 건, 또 감독이 정말 들려줘야 하는 건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가 아니라, 그래서 그가 그 속에서 어떻게 수치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뎌냈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훌륭한 영화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아민의 고통을 그리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그에게 고통을 준 외부의 폭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그래서 그가 어떻게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는가이다. 영화는 아민의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가 과거를 직면하고 자신을 인정하며 미래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담대함은 각자의 불행을 마주한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격려가 되기에 충분하다.



영화 이후 아민은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고, 고독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반려자를 찾고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마련했어도 그를 이루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애니메이션과 가명으로 신변을 감추어야 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을 공유할 때 우리는 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견뎌낼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이 자신을 찾는 여정 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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