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감독 로랑 티라르
"우리, 시간을 좀 갖자."라는 통보를 연인에게서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시간'이 통보를 받은 이에게는 얼마나 끔찍한지를. 주인공 아드리앵에 따르면 이런 경우 우리는 실의, 분노, 희망의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아, 절망과 절망누리기까지 합하면 5단계라나. 연인 소니아의 연애 휴식 선언 38일째, 아드리앵은 마침내 소니아에게 문자를 보내고 만다. 몸은 가족과 식사 자리에 함께 하고 있지만 답장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에게 가족들이 하는 대화가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5시 24분에 보낸 문자를 6시 56분에 읽고도 답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전 중에 내 문자를 보고 답장을 하려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건 아닐까?
그녀가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를 찾으려 과거의 기억을 뒤지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매형이 갑작스럽게 '결혼식에서 축사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맙소사, 왜 나에게? 나같이 재미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심하게 긴장하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할 얘기 리스트'까지 작성해야했던 사람에게? 이제 아드리앵의 머릿속은 '왜 소니아는 답장을 하지 않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축사를 (안)할 것인가'로 두 배로 복잡해진다. 거기다 우리 집 식구들은 밥 한 끼 먹는 와중에도 왜 이렇게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지!
영화는 이렇게 어지러운 아드리앵의 머릿속을 그대로 따라간다. 방심할 때마다 뒤를 돌아 눈을 마주치며 '우리 누나가 이렇다니까요!'나 '그런데 소니아는 왜 그랬을까요?' 따위를 속삭이는 아드리앵 때문에 관객들도 그의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관객은 아드리앵과 소니아와 애틋한 추억을 엿보는가 하면, 가족에 대한 그의 냉정한 평가를 듣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며, 축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그에게 '그 말만은 안돼!' 하며 고개를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구 끼어드는 회상과 상상 가운데 조금 헤맬라치면, 영화는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아드리앵의 방백을 통해 관객을 현재의 시간으로 가뿐히 데려온다.
프랑스 영화는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이 영화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는 일상의 갈등을 그려내며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아드리앵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 방식으로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을 해대는지 영화에서 숨겨진 의미 찾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지나치게 떠먹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로맨스코미디이자 가족영화임을 생각해보면 각각의 인물을 개성 있고 사랑스럽게 그려내기에 이만큼 다정한 방법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27년간 묻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백과사전을 선물한 누나와, 시도때도 없이 자기가 아는 걸 뽐내기 좋아하는 매형을 위해 뻣뻣한 아드리앵은 완벽한 축사를 할 수 있을까? 평화로워 보이지만 절반의 진심과 절반의 인내로 아슬아슬 이어지는 가족의 식사는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는 소니아와 재회하게 해달라는 아드리앵의 소원을 마침내 들어줄까? 이 영화를 볼 독자를 위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끼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의 제목과,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올린 어느 유명한 경전의 구절이 어느 정도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개역개정성경, 잠언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