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 임지선 감독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삼행시와 테니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물론 삼행시를 혼자 지을 수는 있다. 테니스도 벽에 대고 혼자 칠 수 있다. 그러나 운을 띄워주는 상대 없이 혼자 읽는 삼행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트너 없는 ‘벽치기’ 테니스는 제대로 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행시도 테니스도 둘 이상이 주고받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재미가 살아난다. 둘째, 두 사람의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언제 운을 띄우고 언제 라켓을 휘둘러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알지 못하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던 그것은 곧 떨어지고 만다. 삼행시는 의미를 잃고 테니스는 재미가 없어진다. 이 두 가지를 다 충족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간관계다.
정희와 민영은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룸메이트로, 삼행시 클럽으로 우정을 이어온 친구다. 그러나 영화는 이 삼행시 클럽이 해체되는 ‘수능 100일 전’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미래를 꿈꾸는 두 사람의 타이밍은 조금씩 비껴 나가고, 방향을 잃은 공은 떨어져 어색한 방 안을 굴러간다. 그래도 기숙사라는 같은 공간, 수험생이라는 같은 신분 안에 있을 때는 언제든 그 공을 다시 주워 게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가 선수복을 집어던지고 경기장을 나가 버린다면?
하버드의 산나, 대구대의 민영, 청주의 정희는 이제 학교가 아닌 화상채팅방에서 다시 만난다.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삼행시도 주고받아본다. 이제 마지막 정희의 차례, 두번째 운을 받은 정희의 말이 이어지는 중인데 집중하지 못한 민영이 세번째 운을 띄워버린다. 정희의 공은 민영의 라켓을 지나쳐 허공을 가르고 테니스장 바깥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민영은 이제 다시 게임을 할 생각이 없다. 그 다음 화상채팅에서 민영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정희와 민영은 그렇게 잘 맞는 파트너는 아니었던 것 같다. 테니스장 사장님이 들고 있는 정희의 이력서 앞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는 사실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중략)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배운 것들(사회성 같은 것들..)도 많아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희는 주도적이고 사교성이 좋은 민영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삼행시클럽도 아마 민영이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는 가장 첫 장면, 셔터를 누르는 사람은 보통 대형의 가장자리에 가서 서게 되는데, 굳이 가운데에 끼는 민영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민영도 자신을 ‘효용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정희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방안에 걸려있는 민영의 가족 사진은 반쪽뿐이다. 남자들만 모여서 찍었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고 선 민영의 가족들은 아마도 한국인의 전형,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민영은 그런 ‘가식과 형식’을 경멸하고 자신만의 효용을 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민영은 한국인의 틀을 벗어난 정희의 세계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바보 같다고 여기며 은근히 깔본다. 어쩌면 이렇듯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그래도 정희는 포기하지 않고 민영과 관계를 이어가기를 시도한다. 몇 번인가 어울려주는 듯했던 민영이 결국 또다시 혼자 떠나자, 이번엔 밖으로 넘어간 공을 찾아 나선다. 정희는 민영의 냉장고도 열어보고, 책장도 뒤져 보고, 일기장도 펼쳐 본다. 그런데 그곳에는 민영이 미처 받지 못한 다른 공들이 굴러다닌다. 기숙사에서 살던 시절 정희가 제시했던 각종 기발한 상상들부터, 롤러코스터도 없는 시시한 청주에 실망한 친구들의 눈치, 아무도 봐주지 않은 채 구석에 처박힌 오디션 영상 씨디까지. 민영이 어디로 떠났는지, 또 떠나고 싶어하는지 알게 된 정희는 이제 삼행시 대신 성적표를 쓴다. ‘넌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인이었음 해’라는 다정한 설명이 달린 낙제점을 남기고, 공 대신 둥근 경단을 빚어둔다.
집으로 돌아온 민영은 정희가 써둔 성적표를 모두 읽고, 그가 빚어 둔 경단을 한 입 베어문다.그 뒤로 민영은 정희와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삼행시 클럽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장면만으로 그것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정희의 그림과 민영의 (이름을 단)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장면까지 보고 나면 이런 예상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테니스장 밖으로 나가 숲으로 사라진 민영이 약초의 박사를 넘어 숲의 정령이 될 때쯤이라면, 그 때엔 아마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삼행시든, 테니스든, 우리가 그 시절 함께 꿈꿨던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