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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y 31. 2021

바다가 품은 마을, 라스페치아

#2. 마음 편해지는 한인민박이 있던 마을

어둑어둑 해가 질 때쯤 라스페치아에 도착했다. 혼자서 체크인을 하고 자야 하는 대망의 첫날이었다. 한인민박 경험이 없던 나에게 첫 한인민박에서의 하룻밤이기도 했다. 평소 한인민박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보며 굳이 외국까지 가서 한식을 챙겨 먹어야 하나, 더 저렴한 현지 숙소에 가서 아낀 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더 사 먹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인 민박에 빠져버렸다. 혼자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이곳이 더할 나위 없는 숙소 같다. 아침이나 저녁 잠깐이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쉽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숙소에 머무른다는 것 하나만으로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 주소를 구글맵에 찍고 찾아가는데 미리 나와계신 사장님이 보였다. 이날 예약자는 나 하나뿐이라며 예쁜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이렇게 예쁜 방에서 자는 건 처음이었다. 나 혼자 눕기 벅찬 큰 침대와 벽마다 하나씩 걸린 푸른 바다액자. 또 자는 방에 샹들리에라니. 신난 마음으로 짐을 풀고 잠깐 야경을 보고 온다고 하니 가까운 곳을 알려주셨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카메라 하나 챙겨 나가는 길. 딱 예쁘게 해가 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본 차보다 배가 더 많은 이곳. 바다이지만 호수처럼 잔잔했다. 바다가 꼭 마을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 위로 번져가는 노랑 파랑 빛을 바라보니 없던 감성도 생길 지경-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골목 풍경. 해는 들어갔지만 아직 남아있는 짙푸른 하늘,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하얗지도 붉지도 않은 노란빛 가로등까지 모두 마음에 쏙 들었던 골목길이었다. 만족스러운 밤 산책을 마치고 오늘 하루 동안의 피로를 샤워로 씻어냈다. 이대로 자기 출출해 가져온 컵라면을 꺼냈다. 많이 망설이다 용기 내어 사장님께 컵라면 같이 드시지 않겠냐고 여쭤보았다. 저녁을 드셨을 수도, 라면이 당기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흔쾌히 함께 먹어주셨다. 긴장이 풀려 말문이 트인 내 말을 묵묵히 잘 들어주시기도,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시기도 하셨던 사장님. 문득 평온한 이 마을과 사장님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끌벅적 유쾌한 느낌보다 심야식당 같은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누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나롤라 일몰 하나만을 바라보고 온 이곳에서 뜻밖의 보물 장소를 발견한 날, 내 첫 한인민박이 여기였던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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