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바라고, 더 좋은 글을 쓰기를 바라고, 살며 웃을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기를 바라고, 더 많은 모험을 하기를 바라고, 더 용기를 내서 살기를 바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최은영 작가님의 <잊지 않음> 추천사다. 책을 다 읽으면 왜 이런 말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박민정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고, 산문만큼 작가에 대해 내밀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나'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글을, 타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쓸 수 있다는 것이 매번 놀라울 뿐.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막내 남자 동생만 남기고, 여자로 태어난 두 딸을 해외로 입양 보낸 그 시절의 이야기는 사실 작가님의 고모에 대한 이야기, 노노 재팬에 대한 이야기, PC 통신 시절에 보았던 엘리트주의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 90년대 자유가 진정한 자유였을까 반문하는 이야기 등 박민정 작가님은 한시도 긴장을 놓는 순간이 없다. 어쩌면 가장 개인적인 글을 쓰는 와중에도.
산문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는가, 다시금 놀란다. 존경하는 분. 닮고 싶은 분.
사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예민해진다. 예민도 일이고, 예민해봤자 돌아오는 덕도 없어 제발 그만 예민하자고 생각하지만, 태생이 그런데 그게 쉬우랴.
박민정 작가님을 처음 뵀던 곳은 혜화 예술가의 집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님의 존재에 대해 알긴 알았지만,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여성과 퀴어가 꿈꾸는 오드 유토피아"라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북토크에 이끌려 갔고, 그날 말씀하시던 작가님의 인상이 깊이 남았다.
기억이란 늘 주관적이고, 오래 전의 일이라면 왜곡과 날조가 있을 수 있지만,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작가님의 모습은 시선을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도 꿋꿋이 얘기하시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의 이야기와 닮았다.
분류를 하고 싶지 않지만, 박민정 작가님 글을 읽고나면 확실히 다르다라는 것을 느낀다. 감정을 배제한 담담히 쓴 것 같지만 그 꾹꾹 눌러쓴 것 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쉽게만은 읽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좋다.
공부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문제의식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글을 자꾸자꾸 써내려 가신다. 심지어 산문집에서까지 여러 존재와 소외받는 것이나 잊지 않겠다고 말하시면, 그렇다면, 나도 그저 묵묵히 따라 읽는 수밖에 없다.
다시 예민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가님 덕분에 나는 그 예민함을 잊지 않는 에너지로 치횐해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젊은 여성 작가들 중 단연 독보적이고, 작가님의 글이 조금은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