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vi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노 Feb 16. 2022

아무래도 나는 적당한 상업성이 좋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1, 2를 보고

오늘 드디어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 정주행을 마쳤다. 좋아하는 시리즈들은 어쩐지 아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틀 만에 다 봤다. 여전히 상큼하고 발랄한 에밀리와 매력적인 카미유, 로맨스를 꿈꾸고 싶게 만드는 파리라는 도시, 화려한 하이패션들, 그리고 30분 내외라는 짧은 러닝 타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무래도 나는 10대 때 <가십걸>과 <스킨스>를 보고 자란 키즈라, 이런 가벼운 킬링타임용이 그리웠다. (아, 물론 <스킨스>는 절대 가볍지 않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연애 이야기니, 이어질 듯 안 이어질 듯 애매한 타이밍이니, 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가벼운 킬링 타임용으로 보기 시작한 <에밀리, 파리에 가다>.


쉽게 말하면, 적당히 상업적이고, '사랑'이란 대주제로 에밀리의 성장을 그려나가니 호불호 없이 가장 쉽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서사다. 근데, 이런 서사가 가장 어려운 것 아닌가? 대중적인 서사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좋은 콘텐츠는 늘 콘텐츠를 보고 나면 꼭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가 그랬다. 몇몇 사람들 리뷰는 고구마라고 하는데, 사실 난 한국형 로맨스 드라마보다 이런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 없이 그냥 서로가 마음에 들어서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다시 재결합하고. 어쩌면 이게 해외의 기본 정서이기 때문에 외국 드라마는 이런 서사가 많은 거겠지? 


아무튼, 나도 처음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서사는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나도 금사빠이고,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는 고난이고 역경이고 뭐고 그냥 나아가면 되는 것들이니까, 오히려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 이입이 되지 않는달까. 


말이 자꾸 옆으로 새는데, 어찌 됐든 내가 왜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다 보고 나서 글을 쓰고 싶었냐면, 바로 시즌2 마지막 장면 속 에밀리의 결단이 보여서 좋았다. <가십걸>과 달리 여적여 구도가 없고, 여성들끼리 남자로 치고받고 싸우지도 않고, 그저 서로의 행복과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유독 내가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즐겁게 본 이유는 에밀리가 나처럼 느껴졌달까. 워커홀릭이 될 뻔했던 지난날, 책임감과 열정이 흘러넘치던 20대 중후반의 내 모습을 보면서 에밀리가 그토록 열을 다해 일하는 모습도 기본적으로 공감이 됐고,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체류 경험이 아닐까.


나도 영국에서 1년간 일을 하면서 지냈었다. 그때 사랑했던 사람이 있는데, 우리의 끝날 관계에 대해서 알면서도 시작을 했고, 그렇게 끊긴 관계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다. (아마 영원히 아름답게 그 시절의 우리를 간직할 것이다) 무튼, 일 년이라는 타국에서의 생활, 이 세계에 발 붙이고 있지만 어쩐지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그곳에서, 살짝 환상 같은 그곳에서, 이 사랑은 잠깐일 뿐이고, 잠시 분위기에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에밀리도 계속 가브리엘을 밀어낸 것임을 안다. 게다가 파리에서 처음 손을 내밀어준 친구의 애인이라면 더욱더. 음, 친구냐 사랑이냐. 잘 모르겠다. 나는 이번 전개는 꽤 괜찮게 느껴졌다. 다만, 좀 마음이 씁쓸했던 것이 에밀리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면서도 가브리엘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 어찌 됐든 그것은 사랑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열망일 수도.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서사의 포인트는 '결단'과 '성장'이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 마지막 부분에 에밀리가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파리에 남겠지. 가볍게 시작한 타임 킬링용 콘텐츠에 마음을 이렇게 쏟아붓게 될 줄이야. 


에밀리가 에밀리만의 인생을 위해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나는 그렇게 여성들이 결단을 내리는 모습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에밀리는 파리에 있으면서, 현실인 듯, 조금은 환상인 듯한 이 세계에서, 잠깐 즐기다가 그리고 열심히 일 하다가 시카고로 돌아가 승진을 할 생각에 있던 에밀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행동은 변한다. 그런 부분들이 좋다. 나도 영국을 가기 전엔 그랬지.


파리에서의 이전과 이후의 에밀리는 건널 수 없는 강일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언어가 다르고, 잠깐 머물다 가는 정거장 같은, 그러나 이 세계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에밀리가 더욱더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기를.


아무튼, 외국 체류를 일 년이라도 해본 사람이 있다면, 특히 유럽이라면, 이 시리즈가 불러오는 향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과 너무 다른 외국. 그래서 한국에서는 영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없었는데,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다시 외국에 가고 싶잖아.


무튼, 어찌 됐든 아무래도 나는 적당한 상업성에 좋다. 아니, 너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연대보다는 사적이며, 우정보다 진한 감정을 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