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델마와 루이스>
이상하다. 왜 누군가를 기억하고 반추한다는 것은 결코 시간의 질량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함께한 시간이 많으면 의당 영원한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관계는 진짜가 아니라는, 흔히들 말하는 일상 속 진리를 활자 그대로 무구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내 경험 또한 실제로도 그랬기에.
몇 년 전, 10년을 함께한 친구와 연을 끊어버렸다. 우리의 시간 앞에 아무 승자도 없을 거라고, 우리의 우정은 사랑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친구였다.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는 이런 농담 따먹기나 하겠지, 라며 우스갯소리를 만날 때마다 했던 친구. 그러나 10년을 돈독하게 지낸 친구와는 이제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척 하며 지나가는 사이가 되었다. 더는 ‘우리’라는 범주에 묶일 수 없는 관계. 아쉬움도, 슬픔도, 후회도 없는 사이. 정말로 다신 안 만났으면, 그러나 진심으로 이제는 네가 행복하게는 살길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만 남은 사이.
여성의 우정과 성장을 그려낸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나서 생각났던 사람이 있다. 이제는 멀어져 버린 10년 지기 친구도 아니었고, 현재까지 20년 우정을 지켜온 소꿉친구도 아니었다. 작년 봄에 알게 된 사람이 떠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많으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났던 사람이었다. 약 9개월 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었고, 아주 정확하고 계산적으로 따지자면 기껏해야 내 인생에서 10번 정도 만난 사람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나서 왜 그 얼굴이 떠올랐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고작 열 번 남짓 본 사람이 그립다니. 좋은 관계였지만,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어 누구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영화 주인공 이름인 델마와 루이스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남편의 집착적인 구속으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델마와 자유분방한 루이스는 오랜만에 여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자체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던 델마. 한껏 흥이 오른 델마는 잠시 목을 축이러 들린 펍에서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루이스는 델마를 강간하려던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인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그들과 경찰의 추격전.
살인이라는 의도치 않은 사고로 둘은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함께 도주하기로 마음먹는다. 도주 중에 델마는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속인 한 남자에게 홀려 루이스의 전 재산을 도둑맞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계속해서 ‘함께 도망’간다. 그 과정에서 수동적이던 델마가 주체적으로 변해 도둑질을 하며 주린 배를 채워가고, 지나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만날 때마다 성추행하던 가스 운송자의 트럭을 호탕하게 폭파하기도 한다.
죄를 저지를수록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그들. 그들이 여성이기에 옭아맸던 것들을 직접 단죄하는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서 그들의 탈법이 어쩐지 이해할 수 있는 탈주이자 정의 실현으로 느껴져 점점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델마가 주체적으로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의 결말을 보자마자, 나는 새로운 관계와 감정을 갈구하게 됐다.
영화 말미에 결국 경찰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델마와 루이스. 둘은 자수를 하고 감옥에 가는 선택이 아닌, 함께 자살하기를 결심한다. 그들에게 남은 인생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던 가장 불안정할 때보다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둘. 훌륭하게 행복하자고 다짐한 그들의 여행은 함께해서 진실로 행복했고, 둘의 우정은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앞뒤로 추적해오는 경찰차 앞에서 낭떠러지로 차를 몰아가는 그 순간, 둘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 바람에 휘날리던 그때, 델마와 루이스가 입을 맞추며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그 장면을, 나는 진정 잊지 못할 것이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연인이라는 관계에서 불리는 사랑만이 진정한 행복과 사랑은 아니라고, 사랑을 뛰어넘는 여성의 우정도 분명 존재하고, 그 우정만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델마와 루이스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20대 중반을 넘어가며, 나는 이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관계에 어느 정도 통달했다고 오만했다. 신호등처럼 적당히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좋은 관계 속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 이제는 아무리 사람이 좋을지라도 누군가 떠나거나, 내가 떠남에 있어 감정의 동요가 없으리라 생각했고, 나이가 드니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고작, 기껏 10번 남짓 만난 사람이 어느 날 캐나다로 떠나게 됐다고 말했을 때 나는 분명, 내 감정은 분명히 슬펐고, 우리의 연결 고리가 끊어질까 서글펐다고. 관계는 결국 함께한 시간의 물질적인 질량과 총량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으로 인해 울컥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그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확답을 내릴 수 없지만, 아무튼, 짧은 시간 좋은 관계를 맺었어도 떠남에 슬프지 않은 사람도 있고 슬픈 사람도 있다고. 그 차이는 나도 모르겠다고. 덧붙이자면, 사회에서 만난 진정한 우정관계도 분명 존재한다고. 그리고 지금 내가 확실히 원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지금껏 보편을 담당해온 이성애적 사랑이 아니라 동성간의 우정, 그것도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 되기를 원한다고. 지금 나는 연대보다는 사적이며 우정보다는 깊은 감정을 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