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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Feb 15. 2021

몰입의 명목

아침 글쓰기 100일 챌린지, 그 이후 이야기

 저번 주에 완재한 매거진인 <아침 글쓰기 100일 챌린지>를 완성하고 나서 더 이상 글을 쓸 명목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도 글쓰기 시간은 비어있었고, 빈 시간은 늦잠 시간으로 탈바꿈했다. 며칠 전에는 자는 시간이 거의 10시간에 육박하는 바람에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새벽 기상에 열을 내었지만, 새벽은 고사하고 아침 7시 언저리에 하루를 맞이하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뭔가를 해냈다고 일희일비하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매일 무언가를 완수한다고 해도 또 다른 시도와 완수로 이어져야만 그것에 의미가 있다. 물론 작은 시도에 칭찬해주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만으로까지 번지면 안 된다.



인생은 몇 번의 죽음과 몇 번의 부활이 반복하면서 연속하는 것이다.


 이전 매거진을 완성한 것은 일련의 '죽음'이었다. 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글을 쓰고 완수했던 나는 100일을 채우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부활'을 꾀하고 있다. 바로 새로운 매거진 <아침 90분의 글>과 함께 말이다. 이전 데이터를 기준으로 나는 평균 글 한 편을 쓰는 데에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아무리 해도 하루 24시간 중에 1.5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매거진 타이틀을 선정해보았다. 늘어난 잠시간을 약 2시간만 줄여도 가능한 일이다.


 요 며칠은 특히나 글쓰기의 갈증이 대단했다. 단 일주일 정도 브런치에 글을 안 썼던 것이었지만 매일 먹던 아침 사과 한 알을 빼먹은 것 마냥 찝찝했다. 쓰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뱅뱅 돌 때, 나는 이전 매거진의 원고를 수정하는 것보다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아침마다 쓰는 한 편의 글쓰기에 몸과 머리가 적응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고생인지! 욕망의 절반이 실현되면 고생은 두 배가 된다는데, 고생스럽더라도 글쓰기의 욕망을 끝까지 펼쳐보고 싶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무언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사람은 불구덩이에 떨어져도 행복하다.



 패티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몰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 없어서.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그래서 그는 글을 쓴다. 파리의 멋진 풍경을 둔 기차 안에서도,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원고를 직접 보게 되는 영광 속에서도 그는 글쓰기를 갈망하고 또 불태운다. 그저 사는 삶은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헌신하고 몰입한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몰입에의 욕망이었다. 하루하루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재미있는 것들로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글쓰기를 나와의 대화, 그리고 존재의 표현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아침 한 편의 글쓰기다. 쏟아내고 풀어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는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더 큰 의미일지는 조금 더 가보아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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