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 Feb 16. 2021

저녁 7시 반의 고양이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면 생기는 일

 매일 저녁 아파트 단지를 둘러 걷다 보면 길 구석구석에 사는 고양이들을 보게 된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도 자주 마주친다. 저녁마다 산책을 나간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으니, 매일 똑같은 길을 걸은 지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사실 고양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한 번 만져보거나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고양이들에게 큰 관심도 없거니와 대체로 운동하는 데에만 집중했었는데, 그간 눈에 익은 고양이가 한 두 마리 생겼다. 그간 고양이들을 무의식적으로 관찰하면서 나중에 독립을 하면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아니면 내 고양이만 케어하는 것보다 종종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에게 밥도 주고 챙겨주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워낙 새끼와 가족 함께 사는 길고양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전 6개월간 알게 모르게 집 주변 고양이들을 보다 보니 이제는 안 보면 서운한 고양이가 한 마리 생겼다. 바로 이 아이다.



 요 며칠 내가 매일 마주치는 고양이다. 그것도 비슷한 구역에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멀뚱이 운동하는 나를 쳐다보듯이 서있다. 밥 주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똑같은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나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일주일 내내 같은 고양이를 같은 곳에서 보다 보면 그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고양이들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기한 점은 딱 7시 반만 되면 이 아이가 바로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며칠 전 비 오는 일요일에는 운동을 빼먹었는데, 갑자기 고양이 생각이 나더니 비는 잘 피하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시계를 보니 놀랍게도 시간은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운동을 할 때 이 고양이를 생각하면 왠지 힘이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다가도 조금만 더 가면 고양이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코스를 끝까지 완주하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 비슷한 곳에서 보는 귀여운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마치 학창 시절 풋사랑 같이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내가 웃기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몰입의 명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