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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Mar 17. 2023

반역자가 되다

엄마 밥으로부터의 독립

나는 2018년도부터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비건 Vegan이란 윤리적인 이유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동물성이 포함된 음식, 옷, 생활용품 등을 불매하는 것을 말한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식습관의 변화였다. 평생을 즐겨 먹던 고기, 우유, 계란 같은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대신 곡식, 채소, 과일 같은 식물성 식품을 위주로 식단을 서서히 바꾸어나갔다.


 변화를 결심하고 나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아무 음식을 맘 놓고 먹을 수 없었다. 식당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바뀌었다. 메뉴에 혹시나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 있는지 직원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일이었다. 

 "혹시 여기 계란이나 우유나 고기 들어갔어요?"

 김밥을 주문하며 고기를 빼달라고 하면 햄과 계란은 빼지만 어묵이나 맛살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국숫집에 가서 육수를 빼달라고 말하면 어떤 사장님은 "그렇게 하면 맛없는데" 하며 아리송하게 눈을 흘기기도 했다. 비건지향으로 경험한 한국사회는 그토록 '고기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회적인 만남도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면 예전처럼 인기 있는 맛집을 갈 수 없었다. 맛집이라면 주로 육류를 중심으로 한 음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약속이 잡힐 때마다 가는 곳은 채식 식당이 되었는데, 상대방은 괜찮다고 해도 눈치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상대가 나에게 맞춰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머쓱해졌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크고 작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롭게 라이프스타일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난감했던 것 중에 하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였다. 가족은 '식구(食口)'라고도 부른다. 먹을 식에 입 구, 즉 '함께 같은 밥을 먹는 사이'를 뜻한다. 그리고 가족 식사자리의 중심에는 언제나 엄마의 요리가 있었다. 평소처럼 엄마는 여전히 육류를 포함한 식사를 마련했다. 생선구이, 소고기 미역국, 돼지고기 김치찌개, 참치 김치볶음밥 등. 하지만 엄마가 해준 음식이라도 동물성 식품이 포함돼 있다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비건을 실천하고 2년이 지날 때까지도 나의 가치관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고기 안 먹으면 근육 다 빠져" 라며 진실과는 다른 말을 건네기도 했고, "그래도 조금만 먹어봐" 하며 슬쩍슬쩍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비건 지향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나와 맺은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엄마가 만든 음식 대신 스스로 음식을 마련해서 먹기 시작했다. 엄마가 매번 사 오던 우유 대신에 두유를 사 먹었고, 이주에 한 번씩은 비건 식품을 잔뜩 사두고 끼니마다 요리해 먹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가족 전체의 식습관도 점점 조정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항상 자리하던 우유는 사라졌고 두유로 대체되었다. 엄마의 미역국에도 소고기 대신 버섯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는 김치볶음밥도 언니 몫과 내 몫을 따로 준비해 주었다. 언니가 먹을 것에는 계란을 넣었고 내가 먹을 것에는 계란이 빠졌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해피 엔딩 같지만 그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나는 최근까지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처음엔 진짜 힘들었다"로 시작하는 엄마의 푸념이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음식에서 독립하는 과정을 매우 힘겨워했다. 느닷없이 부엌에 출몰해서 자급자족하는 나는 마치 괘씸한 반역자와 같았다. 엄마 쪽에서 보면 그것은 자기 할 일을 빼앗긴 셈이기도 했다.

 엄마가 생각하기로 가족 내에서 본인의 역할은 '밥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때 맞춰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부엌에서 분주히 식사를 준비해서 먹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보았을 때의 허망감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로 인해 '밥 하는 사람'이라는 역할과의 이별을 강제당했던 것이다.


엄마는 나로 인해 '밥 하는 사람'이라는 역할과의 이별을 강제당했던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어느 순간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유효했던 부모의 역할 무대는 암전 된다. 그러면 대개 부모는 갈피 잃은 실업자가 되곤 한다. 하지만 역할이라는 껍데기 뒷면에 우리가 진짜 마주해야 할 모습이 있다. 그것은 부모나 엄마나 아빠라는 역할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 그 자체다. 50년, 60년을 훌쩍 넘겨 살아온 그들의 존재는 애쓰지 않아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의 투박한 손에서, 그들의 삶의 지혜 속에서 존재는 자연스럽게 증명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쉽게 집착이 된다. 우연히 만난 서로의 삶에 갈고리를 걸어 '좋았던 과거'로 회귀하려 드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집착은 쉽게 사랑의 한 면모라고 포장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란 결국에 상대에 대한 모든 것을 그대로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명백한 현재의 모습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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