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3. 인간관계 편
나는 작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지냈던 것만 같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돌연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하면서, 약 1년 동안 정말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다. 왕래하는 사람은 가족들 뿐인 집에서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5-6일은 외출 없이 지냈다고 하면 설명이 될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와 고립에 가까운 거리두기 속에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나는 나의 삶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일상에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 부여하는 여러 가지 삶의 가치들, 그것은 대부분 재증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삶의 가치 중 하나는 '인간관계'다. 우정도, 친구도 아닌 인간관계가 삶의 가치인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끝은 대부분 물리적 거리다. 최근 나는 스마트폰을 초기화하면서 나의 전화번호부가 완전하게 빈 곳간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내가 연락을 할 수도 없지만 딱히 연락이 오는 사람도 없었고, 이따금씩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서도 거리감이 생긴 것이 느껴졌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올 때면 물론 고맙기는 했지만, 이제 서로 졸업을 하고 만나는 일이 적다 보니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던 와중에 김영하 작가 책의 한 구절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 김영하 <말하다> 中
사실 나도 그간 약간의 허탈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아쉬움도 잠깐일 뿐 곧 나는 일상에 다시 몰입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나와 친해지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스스로 나 자신의 친구가 되어보는 것은 또 다른 발견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얻는 기쁨이 있지만 얻는 만큼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것에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고민과 걱정들 또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쉽게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잠깐씩 만나고 헤어지는 사회적 관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미덕이 필요하다. 대신 나 자신을 훨씬 더 들여다보고 돌봐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학창 시절 간 정말 오래 보고 지냈던 친구들도 이제는 굳이 안부를 묻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 자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비건 지향으로의 식습관, 대화에서 주제를 던지는 방식의 변화였다. 점점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잡혀가면서 그것을 친구들이나 주변인들에게 설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후자를 선택했다. 예전에야 즐거웠던 가십거리나, 오래전 기억에 머물러 변하지 않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돌고 돌아 나의 내면으로 돌아왔을 때, 삶에서 요구되는 많은 가치들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충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가 제시하는 수많은 가치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하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과정은 완전히 홀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얻게 된 교훈이 하나 있다면, 인간관계나 친구관계는 다른 많은 취미들과 비슷하게 하나의 유희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자신만의 취향과 언어를 만들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나 자신' 이외의 것들이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