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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ul 17. 2021

동기의 퇴사 소식을 들은 뒤

직장에 대한 단상

얼마 전 동기 한 명이 경찰을 그만두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로스쿨을 가는 것도, 대학원을 가는 것도,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퇴사를 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고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친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고민과 시점이 무르익게 되면 저절로 결심이 서는 것 같아. 지금은 마음이 편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친구의 말들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실제로 근무한 2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가치, 사상과는 상관없이 위에서 까라면 까야했고 조금의 실수에 대해서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질책만 할 뿐이었다. 조금만 내 의견을 피력해도 나이도 어린것이 계급만 높다고 나댄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나의 인권과 상관없이 나에게 모욕을 주고 막말을 하는 민원인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아쉬운 소리만 해야 했다. 국민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일임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인권은 아무도 고려해주지 않는다. 이게 작금의 경찰의 현실이다.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지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 너만 그런 생각하고 사냐,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냐, 경찰대 졸업했으면 어차피 탄탄대로 아니냐, 그래도 철밥통 아니냐는 주변의 면박을 받기 일쑤다. 각자의 사정이 있음에도 나는 철저히 내 사정을 고려받지 못하게 된다.


어제는 퇴사한 경찰대 선배가  글을 보았다. 그저 경정, 경감  자리 늘리고, 예산을 늘리면 조직의 힘이 강해진다는 논리만으로 경찰의 발전방향을 논한다는 것이 선배가 지적한 내용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종 TF팀이나 전담대응팀이 생긴다. 정말  인사 때마다 새로운 TF 공고문이 올라오고, 동기들을 통해 선배들이 인원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경찰이 비대해지는 것을 건강해지는 것을 착각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보다는 정치권의 요구만 듣기 위해 그때그때 조치들을 취한다는 것이다. 인터폴 본부에서 오래 근무하신 선배가 외국어 능력,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할  있는 외사국이 아니라 지구대 팀장으로 배치되는 것을 보았다. 지구대 팀장이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분이  잘할  있는 일이 있고 그곳에 배치가 된다면 조직 전체적으로 도움이   있음에도 그분은 그냥 수많은 톱니바퀴  하나였을 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일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서 국제개발학 석사를 받고 귀국하더라도 나는 경제팀으로 가야만  것이다. 그냥 그렇다. 내가 잘할  있는 , 내가 조직에 공헌할  있는 것은 다른 분야인데, 그냥 규칙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것이다. 작금의 경찰 조직에서 인력은 그저 소모되는 톱니바퀴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실제 대학 재학 시절 학교의 학생과장으로 근무 중인  선배로부터 나를 포함한 당시 재학생들은 너희 대체재는 널렸다는 막말을 들었다.  당시 언론에 고발한 학생이 없다는 것을  선배는 감사해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막말을 하는 인간이 간부라는 것이 통탄스럽다.) 언론에서는 매년 경찰대 졸업생들이 로스쿨로 가는 것을 먹튀라고 하며 비난하고 경찰대학 폐지론을 불태운다. 다만 그전에   사람들이 경찰에 남아있지 않으려고 하는지, 경찰 내부에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는 것이 아쉽다.


나는 내가 속한 회사를 정말 좋아한다. 물론 일하는 동안 힘들었고, 문제도 정말 많다. 그럼에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곳 중 한 곳이고, 내가 계속 조직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좋게 발전했으면 한다. 제네바에서도 경찰 폭력 규탄 시위에 참여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경찰임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친구들도 나를 유쾌한 경찰이라고 생각해 준다. 유학이 끝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나는 퇴직과 복직 사이에서 계속 고민을 할 것이다. 1년 내에 회사가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발전된 인간 중심의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기처럼 그리고 나처럼 이런 고민을 하는 직원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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