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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ug 04. 2021

순례길을 걷는 중입니다.

또다시 열등감

어쩌다 순례길을 걷는 중이다. 학부생 때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닿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내 안의 고민거리를 해결하고 싶어서 걷게 되었다. 사실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매일 11kg의 배낭을 메고, 23km씩 걷는다는 건 쉽지 않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첫 3일간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5일차를 넘어가는 지금은 할만하다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가 느낀 한 가지는 누구에게나 걷는 데에 자신의 속도가 있고 느릴 수도 빠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서 쉬고, 누군가는 중간중간 쉬어가며 본인 페이스에 맞춰 걷지만 결국 다들 같은 도시에 도착해 쉬고 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순례길이다. 하지만 나보다 앞서 먼저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으레 열등감을 조금은 느끼게 된다. 어제 제네바로 곧 유학을 오는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보다 2살이 어린데 벌써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1년 반의 경력을 쌓고, 새로운 국제기구에서 정직원으로 일을 하며 제네바에서 석사 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진입이 가장 어렵다는 이 업계에 무난하게 진입을 성공하고 앞으로의 모습을 고민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더구나 그 친구는 본인이 가는 길에 의문이 생기면 같은 길을 갔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다시 한번 내 열등감이 폭발하고 말았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개발협력 업계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아는 한 3000명이 넘는 졸업생 중 3-4명도 안 된다. 그 중에서 나처럼 바로 유학을 나와 이 길을 택한 사람은 없다. 다들 경찰에서 해외 파견을 통해 나오신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치가 않다. 의도치 않게 내가 선례가 된 것이다. 후배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형같은 길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제는 나도 내가 가는 길의 정답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내가 해왔던 일들은 얘기해주지만, 사실 정답이 아니고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여러 대답을 해주지만 부끄러울 뿐이다. 스스로 경찰이외의 길을 개척한 여러 선배들처럼 내가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들고 두렵기도 하다. 내가 잘못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순례길을 왔는데 잘 모르겠다. 제네바 혹은 이 업계에 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가진 것이 없다. 영어도 불어실력도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국제업무경력은 더욱이 없다. 내가 잘 해나가는 중인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내가 부족한 것들을 갖춘 사람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낀다. 그간 나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던 열등감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나를 버겁게 하는 것 같다.

흔히 걷다 보면 여러 해답을 찾을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나에게는 정 반대다.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추구하는 길이 옳은 방향인지, 현실적으로 경찰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지, 꿈을 좇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텐데 너무 꿈에만 매몰된 것은 아닌지,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 잘 해나가고 있는지. 길을 걸으면서 계속 기도하고 하느님께 답을 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여러 고민들 속에서 지쳐가는 중이다. 누군가가 답을 주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고 누군가에게 내가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답스럽고 가끔은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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