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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pr 14. 2021

개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고작 국제기구 진출 때문에 선택하려 한다면 생각해봐야 할 것


전 세계에서 가장 국제기구와 NGO가 많이 모여 있는 말 그대로 국제정치와 국제개발의 도시에서 개발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고 가슴 뛰는 일이다. 어쩌다 우연히 개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사명감(?)을 가진 채로 제네바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직업적 배경을 바탕으로 분쟁 지역에서의 경찰력 강화,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에 대한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고 관련 분야로 진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개발학에는 보통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개발도상국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개발하여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가에 대한 공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제네바에서 내가 공부하는 개발학처럼 식민주의에서 파생된 전 지구적 불평등, 빈곤, 난민 등 다양한 국제문제들의 근원적인 원인을 탐구하고 현재 국제사회의 대안은 얼마나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지까지 공부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제네바에서 개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나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하곤 한다. 인류의 가장 어두운 면을 파고들면서 빈곤과 불평등의 근원적 내용을 공부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소모가 심하다.


특히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이다. 식민지는 그 당시 백인들의 관점에서 인도주의적인 관점으로 우월한 백인이 미개한(혹은 계몽되지 않은) 유색인종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작이 된 것이다. 물론 전혀 인도주의적이지 않았고, 전혀 계몽적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식민주의의 유산이 가장 심각하게 남아있는 곳은 단연 아프리카다. 현재도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가장 많은 유엔 평화 미션이 진행 중인 대륙이다. 문제는 백인들이 그어놓은 국경선, 국민국가, 관료주의 그리고 폭력의 문화이다. 식민모국이었던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지 국민들이 저항할 때마다 강력하게 진압을 했다. 아프리카 전반에 폭력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독립할 당시 민족에 대한 고려 없이 편의로 국경을 긋고 그 나라들을 국민국가로 독립시켰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선물(?)은 오히려 재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르완다 대학살, 다르푸르 대학살 등 2차 대전 이후로 비극적인 학살이 두 번이나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이런 역사들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모든 원인을 제공한 유럽인들의 나라에서 유럽인들이 가르치는 개발학을 공부한다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 전 수업 과제로 시청한 영화 Bienvenue en Refugistan이나 Humanitarian dillema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도주의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나는 지나치게 관료적인 입장에서 난민이나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실질적인 지원이 아니라 나의 도덕적 자만심이니 만족감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지 등. 공부하면 할수록 조금 막막하고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도 머.. 내가 선택한 길이니 꾸준히 해야지 별 수 있나 싶다.


가끔은 이런 절망적인 학문을 국제기구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단순하게 선택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물론 이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 새롭게 정의도 하고, 반성도 하고, 향후 내가 분야에 진출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이면을 공부하며 깨닫는 것은 지적인 즐거움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주는 만큼 개발학이 좋다. 그러나 아무 고민 없이 국제기구를 가고 싶다는 이유로 개발학을 공부라도 싶은 학생들이 있다면 한 번쯤 고민을 해본 뒤 개발학을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아무 준비 없이 온다면 허무함,  공허함,  절망감 그리고 감정적 소모가 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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