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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pr 14. 2021

안정성이 주는 감옥

안정적인 직업이 주는 조급함

내 인생은 안정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경찰대에서 학비 걱정, 군대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공부를 하였고, 졸업 후에는 경찰로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발학을 공부하고 있다. 운이 좋게도 국내의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금전적 고민도 없다. 이 곳에 있는 학생들과는 다르게 국제기구에 취업을 하지 못해도 어찌 보면 경찰이라는 안정적인 보험(?)도 있다. 유학휴직을 한 공무원에게는 다달이 봉급의 절반도 주어지는 만큼 금전적으로도, 취업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이 공부만 오롯이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주말부부로 지내셨고, 나에게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지만, 나에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썩 좋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IMF 때 아버지의 실직 이후 떠밀리듯이 아버지의 고향인 지방의 조그만 마을로 왔고, 이 곳이 너무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등학교도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간 이유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여하튼 지방의 흙수저로 자란 나에게 부모님은 본인들이 가지지 못한 안정적인 직업을 아들이 가질 것을 늘 원하셨고, 다행스럽게도 그 아들이 나름 준수한 성적을 유지하여 경찰대로 입학하고 본인들 바람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었다. 대학생 때의 나도 이런 나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에 대한 걱정, 두려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사실 먼발치에서 남일처럼 느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빽이 있다는 부서에 갈 수 있을까 정도의 하찮은 고민만 있었다.


그렇게 직장을 들어갔고, 기동대에서 근무를 1년을 딱 마칠 무렵 일종의 현타가 왔다. 안정성이란 감옥 속에서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나는 평생 먹고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고 기동대에서의 나의 업무도 그랬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때그때 해야 할 일들을 하고, 가끔 국정감사 시즌이나 회계감사 시즌 등에만 조금 벅차게 일을 하다 보면 내 일은 마무리된다. 매일 거의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1년을 이렇게 근무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렇게 있다가는 평범한 '김 경위' 중의 한 명으로 내 인생이 멈출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더 컸던 것 같은데, 이 작은 직장 생활 속에서 나의 존재가 그저 하나의 나사 정도로만 느껴졌다. 솔직하게 고등학생 때 나는 서울대와 경찰대를 제외한 대학들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곳에만 가면 모든 것이 다 될 거라는 지극히 고등학생스러운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쳐다보지 않았던 다른 학교에 간 친구들은 본인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했고, 내가 상상해보지 않은 길로 가곤 했다. 미국으로 박사를 가는 친구들, 로스쿨로 진학하는 친구들, 해외에 취업을 하여 글로벌한 인맥을 자랑하는 친구들. 그 속에서 나는 대학 타이틀, 직장의 안정성만 믿고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안정성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고, 그때부터 다양한 대외활동도 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다행스럽게도 아프리카에 가서 국제기구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고, 장학금도 받고,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여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네바에서 개발학을 공부하는 만큼 많은 친구들은 국제기구나 NGO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인턴십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50개를 넘게 돌리고, 쉬는 날이나 방학도 허투루 보낼까 싶어 어떻게든 경력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에 반해 나는... 인턴십도 할 수 없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과 공부를 외국어로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는 생각에 과제 하나를 끝낼 때마다 혼자만의 만족감을 느낀다. 그 와중에 조금의 성과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차구들과 비교해보니 나는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할 것만 하고 사는, 죽 정해진 것만 사면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더 뭔가 할 수 없는 거 편하게 지내자는 마인드였다. 안정성이 주는 무료함이 싫어서 이 곳에 왔음에도 결국 나는 제네바에서도 여기서 직업을 못 구해도 한국에 가면 된다는 안정성만 믿고 사실 열심히 하지 않고 있었다. 문득 이런 내 모습에 조급함을 느낀다. 나는 끝내 다른 사람들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급함이 든다.


라디오스타에서 유세윤이 라디오스타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불안정할 때가 가장 완벽한 상태다"


초창기 무릎팍도사에 치여서 매일매일 생존을 고민하던 프로그램이었고, 마무리 멘트가 '다음에 만나요 제발'이었던 라디오 스타다. 그렇게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하며 B급 감성을 지닌 공격적인 토크쇼로 자리 잡았고, 중반기부터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매일매일 생존을 걱정하던 그때보단 화제성이 덜하고 MC들의 공격적인 언행도 많이 약해진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인기 측면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유세윤이 한 말은 요즘 내가 가장 공감을 하는 말이다. 고등학생 때 어떤 대학을 갈까에 대한 불안감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후 나의 삶은 불안감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학비에 대한 걱정도, 취업에 대한 걱정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또한 20대 중반의 남성으로서 군대에 대한 걱정도, 돈에 대한 걱정도 크게 없는 상황.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고민하는 청춘, 방황하는 청춘 또는 치열하게 사는 청춘과는 머리가 매우 멀었다. 나름대로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방황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곳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교류할수록 내가 얼마나 복에 겨운 고민을 했나 싶다.


이런 나에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직장을 그만둘지 여부다. 물론 감사하다. 또한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 인지도 잘 안다. 안정적인 직업 덕분에 월급을 받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고, 그동안 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돈도 벌었고, 덕분에 가족들에게도 많은 선물과 용돈을 줄 수 있었고, 나 혼자 살면서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러한 안정성이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는 느낌이 든다. 다들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비해 나 혼자 멈춰있는 느낌이 들어 계속 조급하다. 아마 올해 내로 결정을 지을 것 같다. 안정적인 나로 남을 것인지, 불안정한 나로 남을지 말이다.


"불안정할 때가 가장 완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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