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안 맞는 친구랑 9년 째 베프하고 있습니다
오믈렛 때문에 절교?
도쿄 올림픽 폐막식이 있던 얼마 전에 나는 쏟아지는 연예인 자료조사로 4일가량을 방 안에서 노트북만 붙잡고 있었다. 코로나, 올림픽, 여름휴가로 잠시 중단되었던 방송 녹화가 재개가 되고 그동안 밀려있던 인터뷰 때문에 덩달아 알바생인 내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진 것이다.
푸석한 얼굴과 퀭한 눈으로 마지막 자료를 보내고 나는 몸을 돌려 침대에 몸을 완전히 맡겼다. 피곤해 지친 몸과 카페인으로 각성 상태인 두뇌라는 환장의 조합으로, 누워 있었지만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이 며칠이지’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 캘린더를 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이 a양의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곧장 친구들에게 연락해 스케줄을 물어봤다. 보통 생일마다 큰일이 없다면 a양, b 양, c양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서 만났기 때문에 이번에도 응당 그러려니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취준생, 대학생, 직장인이 한데 섞여있는 무리에서 시간 약속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개별적으로 연락해 비는 시간을 알아내고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를 정하는 일은 항상 내가 도맡아 했다(심지어 내 생일에도). 그렇게 맞추다 보니 토요일에 2시간 정도 시간이 되길래 이제 장소를 정하자 싶어서 나는 a양에게 먹고 싶은 메뉴가 있냐고 물었다.
브런치가 먹고 싶다는 a양의 이야기에 근방에 브런치 가게를 검색했다. ‘여기는 후기가 별로고’ ‘여기는 매장이 너무 작고’ 이곳저곳을 검색해 보다 몇 가지 후보를 정해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2일에 걸친 방구석 회의를 통해 최종 후보지 2곳을 정했는데, 나는 k식당을 가자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최근에 k식당 인근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신식 벽돌 건물이 예쁘기도 했고 밑에는 편집샵이 있어 밥 먹고 잠시 구경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찾아본 곳 중에 가장 메뉴가 다양했다. 그렇게 장소와 시간이 정해지고 나서야 나는 할 일을 끝냈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그리고 만나기 3일 전쯤 a양이 단톡에 그날 조금 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a양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알려주면 우리끼리 미리 시켜 놓을 테니 토요일 전에만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a양은 “여기 가격이 좀 잘못된 거 같지만 난 치즈 오믈렛”이라고 말했다.
a양의 말에 나는 가격을 확인했다.
치즈 오믈렛 12000원.
평균적인 물가를 생각했을 때 싸지도 그렇다고 비싼 가격도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당황했다. ‘여기가 마음에 안 드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다른 곳 가자고 하지... 기껏 시간 내서 찾아본 사람한테 가격이 잘못된 것 같다는 게 무슨 말이야’라며 빈정이 상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봤을 텐데 a의 생일이기도 하고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나는 a에게 ‘너무 비싼 것 같으면 다른 곳 갈래? 네가 가고 싶은 곳 카톡에 올려줘~’라고 짜증을 삼킨 채 말했다. 내가 기분이 좀 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친구 b양은 “그래 a양 가고 싶은 곳 가자~ 근데 지서 올려준 곳 너무 이쁘다~”라고 눈치를 봤다. 중간에 껴서 당황해 있을 b양을 떠올리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a양은 본래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로 예전부터 예민한 성격인 나와 종종 부딪혔다. 부딪친다기 보다는 실상은 내가 a양의 말이나 행동에 언짢아한 일들이지만. 9년이란 시간 동안 ‘진짜 성격 안 맞는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그 점만 빼면 a양은 괜찮은 친구였다.
사실 a양은 “저기 너무 비싸. 가기 싫은데”가 아니라 “요즘 브런치 가격 왜 이래”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a양의 다소 세심하지 못한 말에 이제는 ‘왜 이런 식으로 말하지?’라는 의문보다는 진절머리가 나는 것이고.
혼자 머리를 식힐 겸 누워있었더니 결국에는 ‘a양이랑 친구를 계속해도 될까’라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세상 무던한 네가 하필이면 세상 예민한 나를 친한 친구로 뒀니 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머릿속은 ‘a양 이 못된 지지배’라는 생각을 하면서 손으로는 a양이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를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그래도 이왕 사줄 거 맛있는 곳에서 사주자며 검색을 주구장창하는데 마음에 드는 곳마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여러모로 지친 나는 결국에 치즈케이크는 그냥 동네 프랜차이점에서 사고 대신 약속시간 전에 근처 유명한 브라우니 가게에서 브라우니를 몇 개 사다 주자고 합리화를 한 뒤에야 검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약속 전날 a양은 가게를 몇 곳 더 알아왔다. 다시 방구석 회의가 진행되고 나는 어떤 곳이든 상관없다는 자세로 빨리 장소가 정해지기를 기다렸다. 결국에 후보지는 내가 말했던 k 음식점과 샌드위치 가게로 좁혀졌는데 마지막은 또 내가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k음식점을 고를 수 없었기에 당연히 샌드위치 가게를 골랐다.
당일날 나는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하고 서랍에서 카드 메모지를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볼펜과 함께 가방에 쑤셔놓고 브라우니 가게로 향했다. 인원수에 맞게 3개를 사고 약속시간이 남아 근처에 있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노트북 없이 혼자 스타벅스에 온 게 낯설었지만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키고 카드 메모지에 생일 축하와 함께 짧은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사실 그때까지도 a에게 약간 꽁해 있었지만 편지를 쓰면서 a양과의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니 서운했던 감정이 눈 씻은 것처럼 사라졌다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편지를 다 쓰고 브런치 가게로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니 언제 기분이 안 좋았냐는 듯 마냥 즐겁기만 했다. 샌드위치를 종류별로 시키고 4등분을 했는데 질긴 바게트 빵은 잘 잘리지도 않았고 빵가루가 여기저기 날려 테이블이 엉망이 되었다. 각자 4 등분한 빵을 나눠주면서도 “야 잠깐만 이거 네 토마토다” “이거 먹다가 턱 나가는 거 아니냐”라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고상한 브런치 타임을 상상했던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예상치 못한 광경에 실실 웃으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번 해프닝은 이런 식으로 끝이 났지만 a양과 내가 죽기 전까지 베프로 남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무던해질 수 없고 a양이 세심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앞으로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브런치 가게를 정하다 우리가 절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들으면 '뭐 이런일로 절교를 해'라며 어이없다고 웃었을 게 당연하니까.
근데 경험에서 비춰보면 인간관계란 원래 유치하고 별거 아닌일로 달라지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