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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나는 우울해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

우울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어

어릴 때 나는 손재주는 없지만 창작 욕구는 많은 아이였다. 머릿속은 여러 가지 잡다한 상상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비루한 미술 실력, 음악 실력으로 인해 내가 선택한 분출구는 글이었다.


사실 미술과 음악을 못하기도 했지만 흥미도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예체능에 잼병이어서 ‘내 자식들 만큼은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을 시켜야겠다.’라고 다짐하며 어릴 때부터 우리 자매에게 공부 학원은 안 보내도 미술, 음악, 체육 학원은 보내셨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에 ‘내가 당신의 핏줄이오’를 외치는 딸이었다.


미술 학원에서 명암 연습을 하던 내 표정이 얼마나 불만에 가득 차있었길래 오죽하면 선생님이 나에게 상냥하게 ‘지서야. 학원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단다.’라고 말씀하셨을까


그 와중에 나는 마냥 미술 학원에 안 가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며 그 길로 쪼르륵 엄마한테 달려가서 ‘엄마 나 선생님이 이제 학원 안 와도 된대!’라고 해맑게 말했다. 그때 엄마의 착잡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 번 치고 두 개를 색칠했던 기적의 계산법이 판을 치던 곳

또 피아노도 햇수로는 3-4년을 배웠지만 지금 내가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전부다(그 마저도 하이라이트 부분밖에 칠 줄 모른다). 도대체 난 4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는 안치고 진도 카드에 그려진 과일 그림에 색칠만 하다고 온 걸까?


다행인 건 체육은 곧 잘해서 초중고 때 계주 선수는 늘 도맡아 했다. 여담으로 어머니는 내가 시험으로 반 1등을 했을 때보다 계주 대표가 되었다는 말이 더 행복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자의 반 타의 반 나의 창작 욕구를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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