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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나는야 샌드위치 둘째

사랑은 쟁취해야 하는 거야

나는 세자매 중 둘째다. 위로는 2살 차이가 나는 언니 아래로는 5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소위 샌드위치 둘째가 바로 나인데 가끔 사람들은 ‘그래도 막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덜 차별 받았겠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막내는 늦둥이자 우리 집의 공주님이었다.


누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경쟁 상대는 형제자매라고 했는데 나의 첫 번째 경쟁상대인 언니와의 만남에서 나는 백기부터 들었다.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림을 잘 그려서 툭하면 학교에서 상을 받아왔고 같은 시기에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내가 몇 년 째 바이엘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언니는 체르니 30을 질주했다. 얼굴도 하얗고 예뻐서 어딜가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반면 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바가지 머리, 툭 뛰어나온 광대로 마치 논밭을 질주할 것 같은 선머슴 같은 모습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언니를 향해 ‘아유 이쁘게 생겼네’하며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나는 괜히 딴청을 부렸다. 


언니가 중학교 3학년이 될 때 나는 언니가 다니는 중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을 했는데 운동장에서 체육을 할 때 언니가 창문에 서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자기 딴에는 반가워서 그랬겠지만 ‘00이 동생이래’ 라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얼평이 난무했다. ‘00이가 훨씬 이쁘네’, ‘00이가 훨씬 낫네’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내 뱉은 말들, 그 분위기로 주눅이 들었다. 외모는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러라 그러지 하면서도 내 얼굴이 못생겼나? 하는 마음도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내 노선을 확실하게 정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없다면 내가 잘하는 거에 집중하자하면서. 그래서 나는 ‘청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 부모님은 나한테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ㅇㅇ(언니)이는 안하는데 지서는 깔끔해. 지서 덕에 엄마가 편하다.’라는 엄마의 말은 내가 이 집에서 중요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약간의 우월감? ‘난 청소를 잘해. 엄마아빠는 이런 날 사랑해.’라는 유치한 우월감을 만끽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다. 엄마는 가게를 운영했는데 우리 집에서 가게가 보였다. 그래서 9시 엄마가 퇴근할 때가 되면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서 간판 불이 꺼질 때 까지 기다렸다. 간판 불이 꺼지면 안방에 이불을 깔아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엄마가 이불에 누웠을 때 따뜻했으면 좋겠어서 내 온기로 이불 안을 데웠다. 그리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피곤에 지친 엄마가 들어오면 재잘재잘 ‘내가 이불 깔아놨어.’ ‘내가 따뜻하게 해 놨어.’ ‘내가 빨래했어.’ ‘내가 집 청소했어.’ 라고 애정과 관심을 갈구했다.     


하지만 딸이 셋인 집, 심지어 늦둥이가 있는 집, 먹고 사는 데 전력을 다해야해서 여유가 없는 집에서 원하는 만큼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에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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