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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훈육과 폭력 사이 1편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겠지

내가 기억하는 첫 훈육은 8살 때였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시험을 봤는데 70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방 안에서 아빠한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맞아서 퉁퉁 부은 종아리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나는 방안에 누워있었고. 잠시 뒤 내가 잔다고 생각했는지 아빠는 내 종아리에 연고를 발라주고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때려놓고 약을 발라줘?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했겠지만 당시에는 ‘아빠가 나한테 약을 발라주는 걸 보면 날 미워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일은 앞으로 벌어질 매타작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세 자매 중에서 특히 나와 언니는 자라면서 남부럽지(?) 않게 많이 맞았다. 밥을 먹다가 반찬을 흘리면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다. 그러면 손으로 맞은 부위를 몇 차례 문지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밥을 먹었다. 아빠가 때리려고 손을 들면 막을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두 눈만 질끈 감았다. 익숙해져 갔다.


중학생이 되고 이제 훈육은 폭력에 가까워져 갔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월요일 마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는데 나랑 언니가 담당이었다. 다음날이 중간고사 날이라 언니와 나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래서 언니한테 ‘내가 혼자 갔다 올게’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다가 퇴근해서 쓰레기를 버리는 엄마를 발견하고 같이 재활용을 정리하고 엄마는 집으로 나는 독서실로 돌아갔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갔는데 잔뜩 화가 난 아빠가 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한테 쓰레기를 버리게 했다는 이유로 나와 언니는 단소로 손바닥을 맞았다. 맞으면서도 일부러 안 버린 게 아니었다고. 까먹었었다고. 언니는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고 애걸복걸했지만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세게,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유달리 근육이 약했던 나는 손 마디마디 인대가 늘어났고 부어서 손에 연필을 쥐기도 힘들었다.


다음날 움직이지도 않는 손을 낑낑대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시험을 봤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우리를 때릴 때 엉덩이나 손바닥을 때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폭행은 무자비하게 변해갔다. 머리 팔 어깨 눈에 보이는 대로 때렸다. 발로 머리를 짓밟은 적도 있고 이마가 시퍼렇게 변할 때까지 주먹을 휘두른 적도 있었다. 피멍에 온몸이 붓고 시뻘게졌을 때 나는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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