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게 너무 싫었다. 집에 오는 게 싫기보다는 아빠가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화가 난 아빠가 있는 집에 오기 싫었다.
도착해서도 한참을 현관 앞에서 빙빙 돌다가 현관문에 귀를 대보았다. 집안에서 소음이 들리면 한참을 애꿎은 문고리만 만지다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면 내 시선 끝에는 항상 아빠가 있었다.
나는 그럼 오늘 그의 기분은 어떤지 힐끗힐끗 그의 표정을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표정이 화가 나있다면 냉장고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학원 가기 전까지 방안에 죽은 듯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식탁에서 간식을 먹었다.
아빠가 화가 나있는 날이면 나와 언니는 눈짓으로 ‘오늘 아빠 기분 안 좋다. 조용히 해야 해.’라는 암묵적인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아빠가 왜 화가 나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난 아빠를 피하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보통 아빠는 화가 나있었는데 그럴 때면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방문 닫지 마 이 새끼야” “뭐 먹을 때 식탁에서만 먹으라고 했어 안 했어. 이 새끼들 진짜.”하며 큰 고함과 욕설이 뒤 따랐다. 그러면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채 학원 가방을 가지고 학원 시간이 될 때까지 아파트 계단에 앉아있거나 엄마 가게로 도망 가 있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마냥 우리에게 무섭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같이 농담도 하고 장난도 쳤었다. 그래서 어린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그냥 무섭기만 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예측할 수 없는 그의 기분과 태도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오늘 아빠는 지킬일까 하이드일까.’를 계속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