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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Oct 05. 2020

최한결은 없어, 그냥 커피몬만 있을 뿐.

네가 사람인지 자판기인지 모르게 일하도록 하거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페 알바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원두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게 안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모습은 멋있어 보이니까. 이 같은 고정관념? 은 아마 커피가 상징하는 일상 속의 여유와 미디어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속 유니폼을 갖춰 입은 잘생긴 바리스타의 모습에 설렌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물론 나도 이런 단순한 이유로 막연히 카페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번번이 구인 글에 지원을 해도 연락이 오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계속 떨어지다 보니 괜한 오기가 생겨서 그놈의 경력을 위해 무급으로라도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나를 공짜로 쓰라고 아주 그냥 머슴으로 부리라고 떼를 쓰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습관처럼 넣은 내 이력서에 답을 해주시는 분을 만났고 면접을 본 뒤 다음날 바로 출근하게 되었다.


동네에 위치한 테이크아웃 전문 저가 커피숍이었는데 사장님은 가게를 여신지 4개월 차의 새내기였다. 아마 초보 사장님이셨기 때문에 내가 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4개월이면 아직 경력자의 편리함을 모르셨을 테니까.


가게는 손님이 너무 많았고 체계도 잡히지 않아서 근무시간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래도 나는 비교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카페 알바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하고 꾹 참고 근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보인 나를 뽑아준 사장님은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가 해외에 갈 일이 생겼고(사실 이건 핑계고) 심해진 손목 통증과 진상 손님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계기로 3개월간의 근무를 마쳤다. 사장님은 내게 너무 고생만 했다고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사과할 시간에 직원을 더 쓰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왜 1-2달 만에 직원들이 그만두는지 사장님은 정녕 모르시는 걸까(사실 사장님도 인력이 더 필요한 걸 알지만 인건비 아끼려고 모르쇠로 일관하신 것 같다). 그리고 언제든지 다시 일하고 싶다면 연락을 달라고 하셨는데.


사장님... 사장님 같으시면 연락을 할 것 같습니까... 그쪽으로는 침도 뱉고 싶지 않습니다.


힘들었던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9시 출근이었는데 9시가 영업 시작 시간이었기 때문에 대게 가게 앞에서 손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즉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시간도 없고 아침에 배달 온 재고를 정리할 시간도 없다는 점. 오픈 준비시간과 영업시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출근과 동시에 진이 빠졌다. 예전에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침을 흘렸다. 어릴때는 왜 더럽게 침을 흘리지하며 가차없이 해고했는데, 딱 내가 그 꼴이었다. 입에서 침이 한 바가지 흘러나올 것 같았다.


2. 다른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구마라떼의 경우에 고구마라떼 베이스를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스팀을 해서 손님께 드리는데 이 베이스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경우에는 베이스가 한 음료당 적어도 2통은 있어야 하는데 전타임 직원분들은 베이스가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나 몰라라 해서 카페 오픈이었던 나는 베이스 만들기 전쟁이었다. 사장님이 나만 만든다고 다른 사람들은 꼭 시켜야 한다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셨으니 정말 나만의 일이었던 것 같다.


3. 진상 손님들의 향연. 커피가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고 왜 인사를 똑바로 안 하냐고 고함을 치는 손님이 너무 많았다. 혼자서 몇십 잔의 음료를 만드는데 내가 놀고 있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투덜거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꼭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를 했는데 반갑게 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깊게 숙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신 분도 있었다. 물론 고마운 손님도 많았지만 이 진상 손님들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도대체 왜 휴지를 머그잔안에 넣어놓는 건지


4. 몸이 망가질 때로 망가졌다. 8시간 동안 혼자서 60-70만원의 매출을 커버했는데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못해도 하루에 200잔은 팔았다. 생각보다 샷을 뽑는 게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원래부터 손목이 좋지 않던 나는 일이 끝나면 하루 종일 손목이 얼얼했다. 게다가 시중에 파는 화학성분이 가득한 세제에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 보니 손등이 트다 못해 갈라져서 피가 났다. 고무장갑을 끼고 하면 되지만 막상 손님들은 몰려오는데 고무장갑 꼈다벗었다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계속 서있기 때문에 허리 통증을 달고 사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월급받으면 물리치료 비용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무식하게 일했다.


그래서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바를 그만뒀고 저가 프랜차이점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지나가다가 저가 카페를 만나면 저기 직원도 혹사당하고 있겠구먼 하며 안쓰럽게 바라보며 지나갔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슬금슬금 다시 카페 알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단 개인 카페이며 가격대가 조금 있는 곳으로만! 뭐 결국 사람들이 적게 오는 곳을 원한거지만.


나는 우습게도 이제 내가 일할 곳을 골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이제 나는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경력자니까. 그래서 호기롭게 지원했는데. 무슨 데자뷰도 아니고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마감 경험이 있어야 한다. 라떼 아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원한다. 외국어 능통자를 원한다.


뭔 요구조건들이 그렇게 많은 건지. 내가 지금 대기업 입사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알바를 좀 해보겠다는 건데 어이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알바 자리가 귀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저 시급 8590원에 주휴수당도 안 주고 식대도 없고 사대보험도 안 들어주면서 양심 없이 너무 과한 스펙들을 찾는데 그마저도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씁쓸했다. 그렇다고 다시 저가 커피점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차라리 안 하고 말지).


그러다가 습관처럼 들어간 구인 앱에서 마음에 드는 공고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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