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우울증인지 잘 모르겠다.
병원도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고 요즘은 잠도 잘 자는 편이라 사람들에게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도 멀쩡해서 이제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냥 나의 우울증은 병이라는 녀석을 앞세워 나의 무기력함과 회피를 정당화받고 싶어 하는 나의 역겨운 자기 연민과 비겁함일까.
요즘 아무런 욕구도 감정도 없는 내 상태가 신기하다.
‘무(無)’ 상태에서 나는 이 삶의 해답은 오직 죽음뿐이라며 간절하게 죽음을 생각한다.
배 안 어딘가에서부터 시작하는 통증에 나는 혹시 이 작은 통증이 나를 죽음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하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철없는 기대에 사로잡힌다.
‘암이 아닐까. 암이라면 치료하지 말자. 3개월 정도 시한부 인생이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면 통증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잠잠해진다.
월급날에 나는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선물이라는 단어는 좀 거창하고 그냥 한 달 부지런히 일한 나에게 ‘너 일한 지 한 달 됐어’라고 그냥 알려주고 싶었다.
뭘 사야 하나 이리저리 고민하다 보니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해 본 일은 해봐서 하고 싶지 않았고
안 해본 일은 안 해봐도 알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아냐 그래도 뭐라도 사야 해. 반드시 뭐라도 사야 해’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책방에 들어갔다. 서점 한편에 마련된 베스트셀러 중에 손에 잡힌 두 권을 들고 곧바로 계산대 앞에 섰다. 무슨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디 단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내 웅덩이에 파동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