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이렇게 지나가자. 아침이 오면 괜찮아질 테니
방송작가 인턴을 시작하고 나는 우울하지 않았다.
우울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긴장상태였고 피곤했다. 퇴근을 해서도 제 몫을 못한다는 걱정에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고. 불면증 때문인지 기절할 정도로 정신이 헤롱 거려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계속되는 수면부족에 입안은 구내염으로 난리가 나 음식을 씹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우울하지는 않으니 그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은 역시 배부른 사람들한테나 오는 건가.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은 우울할 틈도 없다더니.’
입사한 지 일주일을 갓 넘겼을 때 나는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잠시 머리를 비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익숙한 감정이 스멀스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우울함이었다.
‘그래. 왜 안 오나 했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 지겨웠다. 이런 삶을 계속 지속해 늙어 죽을 자신이 없었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은 게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도피하는 건지, 내가 재능이 있는지.
온 걱정들이 머리를 헤집기 시작했고 발표를 앞둔 사람마냥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오디오북을 틀었다.
예전에는 ‘우울해도 괜찮아’류의 책들이 너무 싫었다. 그냥 힘든 사람들한테 달콤한 말을 속삭여대며 단지 책을 팔아먹으려는 장사치들 같았다.
그래도 이런 책들이 계속 발간되는 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리스트를 쭉 훑었다.
‘위로랍시고 시답지 않은 충고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뻔한 말은 오히려 내 숨통을 막히게 할 게 분명했다. 그러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라는 제목에 이끌려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곧 다정한 목소리의 성우가 담담히 책을 읽어줬고. 나는 누군가 나를 끌어안고 귓가에 나지막이 ‘괜찮다’라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낯선 이들의 위로가 생각보다 나를 잘 다독여줬다.
‘오늘 밤은 이렇게 지나가자. 아침이 오면 다시 괜찮아질 테니까.’